제사를 보내며
제사를 보내며
  • 경남일보
  • 승인 2021.03.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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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 (성심정공 대표)
 

나는 제사라고 하면 온 동네 아지매들이 앞치마에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부엌과 마당에 솥을 건채 분주히 오가는 장면을 연상한다. 특히 아궁이마다 불을 지피게 돼 온 마을에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걸 연상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제사가 없어서, 제사를 준비하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이웃 집을 무척 부러워했다.

나중에 우리 집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제사를 모셨다. 준비하시는 엄마는 몇 달 전부터 신경을 쓰셨지만, 제사 당일 날만 잠깐 엄마를 돕는 나는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과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더없이 즐거웠다. 딸이 많은 우리 집은 명절이라도 모이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웠는데, 아버지 제사가 설 일주일 전이라 제사 때 만나면 새해 인사자리도 되고 조카들 대학 입학 축하 자리, 조카사위 첫 인사자리, 조카들 전역 축하, 취업을 축하하는 등 즐거움의 자리였다. 제사 음식 준비를 다 해놓고 같이 일손을 도와주신 큰어머님, 숙모님과 오촌 아주머니 등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버지 이야기와 지나간 이야기 하며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 참 좋았다. 시골에서 제사를 모시고 엄마가 싸주신 음식을 담은 봉지를 들고 나오면 하늘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

그런데 엄마가 연로하시어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자 제사를 남동생에게 보내야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힘드시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하면서도 시골에 모이는 정겨운 시간을 더는 가질 수 없다니 속으론 섭섭하였다. 엄마의 다리가 매우 아파 수술을 하시면서 서울에 사는 남동생이 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갔다. 평일이고 코로나로 서울까지 갈 수 없어서 결국 이번 제사에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제사 때 모이는 친정 가족들을 볼 수 없음에 마음이 허전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참 빨리 온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한 만큼 살아계신 엄마에게는 마음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집에 같이 사는 시부모님께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시니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쉽게 생각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사가 갑자기 동생에게로 넘어가듯 우리 부모님 또한 얼마나 우리랑 같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효도의 끝이라 하는 입신양명은 못 하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 하루 세 번 웃는 얼굴로 부모님을 뵐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김성남/성심정공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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