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 /이서린
바람에 비가 날린다
빗방울 매달린 검은 전깃줄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새
꼼짝 않고 저 비를 다 견뎌 내는 새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고
비에 젖어 옥상 난간 한참 서성이던 그때처럼
오지게 젖고 있는
저, 새
-------------------------------------------------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깃털 사이로 파고드는 냉기를 감당하며 그냥 허공에 눈동자를 둔 날이었다.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사연을 다스리며 그냥 젖고만 싶은 날이었다.
외 줄 전깃줄에 후들거리는 체중을 맡기고 무리에서 멀어진 저 새 한 마리
비상을 포기한 채 부리에 맺히는 눈물을 감당하는 그런 날이었다.
호주머니 안의 손은 시리고 신발이 물씬 젖어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날이 있었다.
항변과 저항을 포기한 체 생의 외줄에 휘청된 적이 있었다.
휴대폰의 울림은 안부를 채근해도
분별을 가린 어둠 속에서 헤아림을 묻어둔 체 망연한 두 눈을 빗방울로 채운 날이
있었다.
먼 기억의 껍질을 쪼아대는 시 한 편,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다시 젖고 있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바람에 비가 날린다
빗방울 매달린 검은 전깃줄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새
꼼짝 않고 저 비를 다 견뎌 내는 새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고
비에 젖어 옥상 난간 한참 서성이던 그때처럼
오지게 젖고 있는
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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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깃털 사이로 파고드는 냉기를 감당하며 그냥 허공에 눈동자를 둔 날이었다.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사연을 다스리며 그냥 젖고만 싶은 날이었다.
외 줄 전깃줄에 후들거리는 체중을 맡기고 무리에서 멀어진 저 새 한 마리
비상을 포기한 채 부리에 맺히는 눈물을 감당하는 그런 날이었다.
호주머니 안의 손은 시리고 신발이 물씬 젖어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날이 있었다.
항변과 저항을 포기한 체 생의 외줄에 휘청된 적이 있었다.
휴대폰의 울림은 안부를 채근해도
분별을 가린 어둠 속에서 헤아림을 묻어둔 체 망연한 두 눈을 빗방울로 채운 날이
있었다.
먼 기억의 껍질을 쪼아대는 시 한 편,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다시 젖고 있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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