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LH 조직은 온전히 유지될 것인가
[경일시론] LH 조직은 온전히 유지될 것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1.03.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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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투기가 국민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 분노가 4월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듯한 분위기다. 성난 민심에 놀란 당국은 LH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의 땅 거래도 들여다 봤다. 하여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혐의자를 적발해 냈다. 그러는 사이 내막이 궁금한 LH 전·현직 직원의 죽음도 두 건이나 발생했다. 한 달 가까이 온 나라가 LH 보도로 도배됐다. 하지만 국민들은 조사 범위와 방법과 성과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LH 해체나 조직 분리 주장들이 여과없이 나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LH에 대해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환골탈태하는 혁신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LH 해체를 언급했다. 개발권력 독점을 타파하는 방안이라는 거다. 원내대표가 해체엔 선을 긋기는 했지만 민주당 여러 의원들도 해체나 조직 쪼개기 같은 의견을 앞다퉈 쏟아냈다.

대통령은 사태가 불거지고 1주일쯤 지나 마지못한 듯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면서 “부동산 적폐를 반드시 청산하겠다”고 했다. 이 언급이 향후 LH에 어떤 회오리를 몰고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조직이 과연 온전히 유지될 것인가. 그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해체건 분리건 섣불리 손댈 일은 아니라고 본다.

LH 분리나 해체 주장은 개발정보 악용 같은 부정 비리 소지를 없애자는 거다. 조직 자체를 없애거나 조그맣게 쪼개 버리면 독점적 정보 악용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일 테다. 하지만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쳐 LH를 만든 취지를 되새겨 볼 일이다. 당시 통합의 정책 목표는 효율화였다. 두 조직의 지역 조직을 통합하고 각각의 본부를 단일화하여 조직 효율성을 높이자고 했다. 양 조직의 토지개발 사업 경합에 따른 낭비를 없앤다는 기대효과도 작지 않았다.

한데 정부는 LH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다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듯하다. 과거 두 개 공사 시절의 비효율로 되돌아가려는 거다. 즉흥적이고 가벼운 아이디어라 않을 수 없다. 수술로 될 팔다리를 잘라버리려 한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더욱이 해체나 분리는 LH 임직원들이 내심 바랄 거라는 예상도 있다. 징벌적 성격의 해체 분리겠지만, 조직이 분리되면 ‘자리’는 두 배로 늘어난다. LH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는 셈이다. 어이없는 역설이다.

LH의 해체 또는 분리가 겨냥하는 타깃은 신도시 개발 정보의 악용 차단이다. 사격술로 치면 이 타깃을 명중시키기 위해 목표물 정조준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조준선 정렬’이다. 조준선정렬은 총 가늠구멍에 눈을 댄 사수가 구멍 중앙에 가상의 十 자를 긋고 그 교차점에다 총구 끝 가늠쇠 꼭지를 맞추는 일이다. 그런 후에 가늠쇠 위에다 타깃을 일치시키는 걸 정조준이라 한다. 따라서 정조준보다 더 중요한 게 선행하는 조준선 정렬이 아닐 수 없다. LH 해체나 조직 분리를 둘러싼 여러 의견들, 10여 년 전의 두 공사 통합 취지, 그 구성원들이 분리 환원을 되레 반길 거라는 예상 같은 걸 고려하고 판단하는 일이 조준선 정렬에 해당한다. 가늠쇠와 목표물만 일치시키는 ‘정조준’은 아무리 정확해도 탄환은 엉뚱한 헛방이 되고 만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올해 1000명쯤 뽑으려던 LH 직원 채용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인원의 축소 가능성, 채용 시기가 모두 유동적이란 거다. 지역인재 채용에 희망을 걸고 준비해온 청년 구직자들의 불안감이나 실망감이 얼마이겠는가.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온 서부경남 거점도시의 입장도 씁쓸하다. 이런 문제들이 바로 조준선 정렬을 소홀히 했을 때의 빗나간 탄착점과도 같은 것들이다. 과거 해양경찰청 해체 때와 같은 일시적 감정풀이 조치를 LH에 들이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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