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삼매 탐방
[경일춘추]삼매 탐방
  • 경남일보
  • 승인 2021.03.23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옥 진주문인협회이사
 
사람 같은 꽃이 있다. 매화가 그렇다. 단순한 꽃이 아니기에 깊은 정신 느껴진다. 진주 인근 산청군에 이런 매화가 세 곳에 있다. 남사리 원정매, 운정리 정당매, 산천재 남명매. 호칭하여 삼매다.

남사리 예담촌 하씨 고택 원정매는 육백 살 거목이다. 고려말 세도가 원정공 하즙이 심었다해서 이름 붙였다. 우리나라 최고령 매화답게 역사의 풍운을 온몸으로 맞았다. 죽은 가지 산 가지가 한 몸으로 살아간다. 고목이 힘겹게 피워올린 백매화는 감탄할 만큼 낙천적이다. 봄 한철 고요한 강촌이 의기양양 부활한다. 소멸하는 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본 날이다.

단속사 옛터 정당매다. 고려말 한학자 강회백이 손수 심은 나무라서 그의 벼슬 정당문학에서 따온 별칭이다. 왕조사의 비운을 잊어버린 듯 백매화 창창하고 햇살마저 넉넉하다. 절터 초입에 세워진 사명대사 유정의 시비에도 만감이 더해진다. 꽃과 절과 사람과의 인연을 절절히 읊었다. 오래 오래 읽다 보니 경의 정신 실천한 의로움도 각인된다. 정당매는 눈보라 속에서도 고절함 잃지 않는 설중매의 분신이다. 시대조류 자연 질서에 운명인 듯 순응함이다. 천년 고찰 몰락에 덧없어 말라 하는 당부의 꽃이다. 속세의 인연 끊고 번뇌도 끊고 승과 속 구별 없이 애민사상 꿈꾸던, 무너진 불국정토가 못내 아쉬운 날이다.

중산리 천변이다. 저무는 노을빛이 강물에 투영되니 티 없이 맑아진다. 산천재는 남명의 서재다. 대원사 계곡물과 중산리 계곡물이 합수되는 명당에 터 잡은 후학양성 교육장이다. 천지간 좋은 기가 덕천강에 흘러들자 전국의 인재들이 의병되어 결집했다. 매화나무 심은 뜻이 하늘에 닿았다. 기념하여 남명매다. 사백살 고매는 호령 없는 장군이다. 노기 없는 노기다. 호리호리 큰 키에 준수한 외모로 건국 신화 다름없는 성리철학 꽃 피웠다. 백성들의 동요와 말없는 저항을 연민으로 받들었다. 해서 남명매는 남명의 일생이다. 걸작의 유산이다.

세월 지나 남명매 계승하는 학당 하나 생겼다. 고봉준령 천왕봉 정기 받고 은둔 거사 흠모하는 선비문화연구원이다. 노학자의 발자취를 향기롭게 전수하는 인격도야 수련장이다. 시대의 꽃이 되고 잎이 될 조짐이다. 삼매는 청백리다. 낙향한 선비들의 위대한 포기다. 쇠약 속에서도 울지 않고 낙담 속에서도 웃고 있는 미래지향 봄꽃이다. 반나절 답사길이다. 일상의 쾌유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인지 이런 말 불쑥 나온다. ‘내내 강녕들 하시고 이번 국난마저도 잘 극복하게 해 주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최창민
  • 고충처리인 : 박철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