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무너진 사이 GS칼텍스는 뒤집기 기회를 잡아 2005년 프로배구 출범 후 여자부 최초로 3관왕(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국외 생활을 접고 11년 만에 흥국생명에 복귀한 세계에서 인정받는 ‘거포’ 김연경(33)은 슬픈 결말에 고개를 숙였다. GS칼텍스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끝난 2020-2021 V리그 여자부를 관통한 핵심어는 흥국생명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폭’이다. 레프트 공격수 이재영과 자유계약선수(FA)로 현대건설에서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세터 이다영, 그리고 김연경 등 한국 여자배구의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끈 국가대표 트리오의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 ‘어우흥’ 신화를 예고했다. 셋을 앞세운 흥국생명의 전력이 워낙 다른 팀을 압도해 정규리그에서 30경기 전승 우승, 무실 세트 우승을 이루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규리그 개막 전인 지난해 9월에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에서 GS칼텍스가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하고 우승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확고하던 ‘어우흥’ 대세론에 균열이 조금씩 생겼다.
GS칼텍스는 흥국생명에 대적할 ‘대항마’ 입지를 굳혔다.
컵대회에서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은 덕분에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시작과 함께 10연승을 구가하며 선두를 독주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GS칼텍스가 흥국생명의 앞길을 막았다. 3라운드 첫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2로 제압해 시즌 11연승과 역대 V리그 여자부 최다 15연승 신기록에 도전하던 흥국생명에 찬물을 끼얹었다. 3라운드에서만 3패를 당하고 휘청거리던 흥국생명은 4라운드 전승으로 다시 반등해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선수 간 불협화음이 바깥으로 여과 없이 노출되는 와중에도 5개 팀을 멀찌감치 따돌리던 흥국생명은 올해 2월 10일 전혀 예상치 못한 치명타를 맞았다.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창 시절 폭력을 행사했다는 피해자의 고발이 인터넷에서 삽시간에 퍼졌다. 다른 프로 종목으로 크게 번진 학폭 스캔들의 시발점이었다.
쌍둥이 자매는 공개 사과와 함께 2월 11일 경기부터 출전하지 않았고, 흥국생명은 2월 15일 둘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레프트 주포와 주전 세터가 빠지자 흥국생명의 조직력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학폭 사건’ 전까지 17승 5패, 승점 50으로 여유 있게 1위를 달리던 흥국생명은 이후 8경기에서 2승 6패라는 참담한 성적에 그쳤다. 그중 4번은 한 세트도 못 따고 진 완패였다.
흥국생명을 추격하며 호시탐탐 역전 1위를 노리던 GS칼텍스는 2월 28일 6라운드 흥국생명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해 마침내 선두로 뛰어올랐다.
여세를 몰아 GS칼텍스는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2위로 밀린 흥국생명은 플레이오프로 내몰렸다. 체력을 비축하고 치밀하게 연구한 GS칼텍스가 어렵사리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흥국생명을 3전 전승으로 따돌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유니폼에 5번째 별을 새기려던 흥국생명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대신 GS칼텍스의 사상 첫 3관왕 달성과 구단 사상 첫 통합 우승(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신기원이 열렸다.
IBK기업은행은 정규리그 3위로 3년 만에 봄 배구 무대에 돌아왔지만, 안나 라자레바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단조로운 플레이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수비가 강한 한국도로공사는 기업은행의 벽을 넘지 못했고, KGC인삼공사는 주전의 줄부상으로 상위권 도약의 동력을 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조기 종료된 지난 시즌 1위 현대건설은 흥국생명으로 옮긴 세터 이다영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최하위로 추락했다.
연합뉴스
여자배구 사상 최초 트레블 달성한 GS칼텍스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서울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로 승리한 GS칼텍스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날 경기에서 승리해 여자배구 사상 최초로 트레블(챔피언결정전·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을 달성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