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위험한 상상력
[대학생칼럼]위험한 상상력
  • 경남일보
  • 승인 2021.03.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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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경상국립대신문사 편집국장)
지난 26일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영 2회 만에 작품 폐지를 맞았다. 해당 드라마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세계관을 구축한 판타지 장르로, 22일 첫 방송부터 충분한 역사 고증을 거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악령으로 인해 환각에 휩싸인 태종이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학살하는가 하면, 충녕대군이 사제 일행에게 월병과 오리알 등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 등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고, 중국풍을 과도하게 드러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에 시청자 항의가 빗발치고 광고주가 이탈하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결국 방송사는 해당 드라마의 방영 취소를 결정했다.

이 같은 드라마 속 역사 왜곡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종영한 드라마 ‘여신강림’에서는 극 중 주인공들이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 현재 방영 중인 ‘빈센조’에서는 중국제 비빔밥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철인왕후’에서는 극 중 인물이 우리나라의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며 비하하는 대사가 등장한 바 있다.

최근 중국은 김치, 비빔밥, 등 음식에서부터 한복, 갓, 부채춤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자국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통해서다. 그야말로 동북공정의 새로운 개념인 ‘문화공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국경 내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논리를 펼쳐 나간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경계하지 않고 좌시한다면 우리의 문화 또한 서서히 잠식당하는 수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영국의 국제정치학자 E.H. 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했다. 이는,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를 우리가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이며, 과거를 똑바로 반추해 더 나은 현재, 더 나아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것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작과 상상력이라는 미명 하에, 온전한 사실을 날조하고 훼손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위험한 상상력을 감시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해주길 바란다.

이예진 (경상국립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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