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주최하고 동서문화연구원이 주관하며 진주시 후원으로 열린 ‘2021국제학술심포지엄’이 3일 오후 3시 본보 3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동아시아지역 가면극의 예술세계’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2021국제학술심포지엄은 4명의 전문가들이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제1주제로 ‘동아시아지역 가면극의 역사와 전승’에 대해 박성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발표했고 제2주제는한국 가면극의 역사와 예술세계’의 제목으로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발표했다. 이어 제3주제로는 ‘중국 가면극의 예술성’을 주제로 주항부 중국 상해사범대 교수가 이어갔고 제4주제는 ‘일본 가면극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이토오 요시히데 일본 국학원대학 대학원 교수이 나섰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동질성과 이질성 비교하고 사회제도의 변화에 따른 전통문화의 변모양상 고찰,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성의 재발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었다. 박성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는 “이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민속극에 대한 동질성과 이질성 비교하고 한국 가면극의 활성화에 대한 방향성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동아시아지역 가면극의 예술세계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진주에서 열린 것에 대해 뜻깊게 생각한다”며 “가면극은 흔히 탈춤, 탈놀이로 불리는데 지역에는 진주오광대가 있다. 아무쪼록 이번 심포지엄이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토론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코로나 19 관계로 온라인으로 전환해 개최했고 영상 촬영, 제작, 편집 완료 후 진주시 공식 유튜브 계정인 하모진주 및 경남일보 유튜브 통해 볼 수 있다.
박성민기자
“가면극은 동아시아 전통 문화유산”
◇박성석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가면극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지역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이다.
한국에서는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부르고, 일본에서는 가면극, 중국에서는 나희(儺戱) 또는 면구희(面具戱)라고 하는데 대부분 각국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동아시아지역 가면극의 기원과 전승양상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각 지역의 마을제에서 시작된 향토적이고 자생적인 지역민 중심의 가면극과 전문성을 가진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는 가면극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자신들의 수호신에게 연초에 마을의 무사태평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고, 추수가 끝나면 신이 베푼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는 마을굿을 하였다. 이와같은 마을굿의 성격은 신에 대한 신성성과 오신(娛神)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마을굿 현장에서 신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즐기는 놀이의 하나로 가면극이 연행되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강릉단오제나 하회별신굿처럼 무당들이 마을굿을 주도하고 주민들이 가면을 쓰고 노는데서 마을굿 계통 가면극의 기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가면극들은 강릉과 하회라는 토착적 기반위에서 자생적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연희의 내용, 등장인물, 가면, 춤사위등에서 독자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부분에서는 다른 가면극이나 연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중국의 경우 지역 민향촌 제사 계통 가면극은 다양한 종족과 광활한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매우 독창적이고 다양한 가면극이 생겨났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한족(漢族)의 가면극인 나희의 영향을 받아 본래의 모습에서 다소 변형된 형태의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다. 일본의 서민층에 의해 전승되는 가면극 ‘사토가구라(里神樂)’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그 숫자도 방대하며 그들의 전통종교인 신도(神道)의 신을 비롯하여 불교의신, 조상신 등을 연극적으로 형상화 한데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된 가면극으로는 한국의 본산대놀이, 중국의 나희(儺戱), 일본의 노(能)를 들 수가 있다.
‘본산대놀이’는19세기초 중국사신 영접때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광대들이 성립시켰다고 하며, 본산대놀이의 영향으로 경기도의 산대놀이류 황해도의 탈춤류, 부산의 야류와 경남의 오광대류를 비롯하여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현재도 여러지역에서 나희가 연행되고 있는데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거나, 그들에게 배운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일본의경우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 형성된 노(能)가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형성된 가면극인데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한국 가면극 현실 문제 비판적 제시“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조선 후기에 성립된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제의적 성격에서 벗어났는가 하면, 이전에 존재하던 잡기 수준의 탈춤을 혁신적으로 개작해 연극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
첫째,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문제가 되던 여러 부조리를 풍자한다.
이를 위해 문희연(聞喜宴) 등에서 연행하던 양반 풍자의 유희(儒戱), 산희(山戱)에서 연행하던 파계승 풍자의 만석중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처첩의 삼각관계를 다룬 영감과 할미춤 등 기존에 따로 존재하던 내용들을 결합해 하나의 가면극으로 만들었다.
아극돈(阿克敦)의 ‘봉사도’ 제7폭은 산대 앞에서 공연한 접시돌리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연희들을 ‘산대희’ 라고 불렀다. 특히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쓴 사람 넷이 탈춤을 추고 있다. 그래서 서울 근교의 가면극을 애오개산대놀이, 구파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려 준다. 강이천(1769-1801)의 한시 ‘남성관희자’(1789)는 그가 열 살 때인 1778년 남대문 밖에서 꼭두각시놀이와 가면극을 보고 지은 것이다. 이것은 본산대놀이로서 현전하는 가면극들과 연희 내용이 일치하고 있다.
최근 발견된 채색화 ‘낙성연도’에서 채붕을 중심으로 연행되고 있는 공연 종목들은 유득공의 ‘경도잡지’ 권1 성기(聲伎) 조에 나오는 산희와 일치한다. 채색화 ‘낙성연도’에서는 채붕 앞에서 사자탈춤과 호랑이탈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채붕 위에 칡베장삼을 입은 노장과 기생, 왼쪽 채붕 위에 술에 취해 얼굴이 붉은 취발이와 기생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만석승무(曼碩僧舞), 즉 만석중춤이다.
둘째,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의 주제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으로서 기존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민중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 가면극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빚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등장인물의 명칭에서부터 각 과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암시한다. 노장·소무·신장수·양반·말뚝이·영감·할미 등 신분이나 부류를 나타내는 명칭이 대부분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이름은 드물다. 명칭을 통해 가면극에서 다루는 것이 등장인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이나 계층·부류 사이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유구한 역사…중국 가면의 전통
◇주항부 중국 상해사범대 교수
중국에서 가면은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니며 오늘날까지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지난195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가면은 미약하게 전승되거나 심지어 단절되기까지 했지만 1980년대 중기 이후, 문화 부흥 사조에 의해 나례의식(儺儀)과 나례음악(儺歌), 나례무용(儺舞)등 여러 지방에서 다시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학술계에 주목을 끄는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많은 학자들이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대상이다.
중국 현대 가면희, 나희 가면은 장식품이나 벽 사용으로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대개 나례의식과 나례음악, 나례무용, 나희 등에 의지해서 존재한다. 강서성에는 나문화가 매우 발달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남성, 호북성, 사천성, 귀주성, 운남성, 복건성 등으로 전파됐다.
나례무용을 공연할 때는 모두 가면을 써야 하며 가면의 종류는 100여 종이고 총 2000개가 있다. 이것은 남풍의 나가면이다. 귀무(鬼舞)라고도 하고 맹강녀의 전설이 제의성을 지닌 연극으로서 나희에 속한다. 이 나희에서는 많은 신령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맹강녀희는 나희에서 아주 중용한 공연이고 통계에 따르면 중국 80%의 나희 종목에서 맹강녀희가 존재한다.
지주의 나사활동과 가면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면은 사신(社神), 용신(龍神) 혹은 호도신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마음 사람들은 이를 아주 존경하고 신우(神偶)로 여긴다.
그렇다면 중국의 가면의 역사가 유구하고 분포범위가 매우 넓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중국은 90년대까지 농촌, 특히 외진 산간지역에는 별로 변화없이 농경생산이 주로 경제방식이 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큰변화가 없었으므로 신령을 대표하는 가면이 계속 존재하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중국 나희가 많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보통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고, 농업경제 위주의 지방이다. 둘째 원래의 토착적인 무교(巫敎)와 도교(道敎)는 중국사람의 우주관, 생명관, 사회관, 도덕관 등을 반영하여 무교와 도교의 교의(敎義), 계율, 의식 등 모두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된다. 가면을 도구로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고 귀신을 쫓아 내는 나사활동은 바로 무교와 도교에서 조직한 것이다. 셋째 가난한 생활, 힘든 노동과 우울한 정신 그리고 의사와 약품이 부족한 환경 등은 중국 하층민들의 생명력을 연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더욱 가면을 표지로 삼은 구나(驅儺)문화에 의존한다. 즉, 나희이다.
“日 가면, 한국과 유사점도 발견”
◇이토오 요시히데 일본 국학원대학 대학원 교수
일본 가면극의 흐름은 고대 가면 기가쿠(기악), 부가쿠(무악), 중세 가면 사루가쿠멘(산악가면), 이 사루가쿠멘 중에 특히 노멘(노가면)이라고 하는 곳까지 이어진다. 먼저 조몬시대(일본 선사시대 중 BC 13000년경부터 BC 300년까지) 일본의 조개로 만든 가면, 조몬 중기에 나온 것으로, 일본 가면는 가장 오래된 시가면이다. 이어 중세의 가면으로 ‘오키나라’가 있다. 입과 코가 비뚤어져 있는데 이러한 가면은 매우 드물다.
6세기경, 불교와 함께 기악이 일본에 들어오는데 여기서 기악 가면이 갑자기 나오게 된다. 이는 조몬시대부터 야요이 시대(조몬시대 이후 수도작 농업을 기초로 한 최초의 문화 시대)까지 일본 역사 속에서 가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6세기경 등장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7세기 백제의 미마지가 ‘쿠레’, 오국(吳國)에서 기악을 배워 일본에 가져왔다고 하는 구전이 있다.
다음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오니’가 있다. 오니는 일본의 민담과 향토신앙에 등장하는 악귀로 텐신(천신)이라는 입을 벌린 오니, 베시미라는 입을 다문 오니 등이 있다. 대체로 오니가 입을 벌린 오니와 입을 다문 오니가 짝을 이루어 발굴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심수관 가문(왜란 때 끌려 온 도공 집안)이 가지고 있는 가면이 하나 있는데 이 도공 가문이 입을 다문 오니와 입을 벌린 오니를 가보로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가져왔다고 하니, 만약 사실이라면 상당히 오래된 가면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가면과 일본의 가면이 이러한 형태로 볼 때 적어도 오니에 관해서는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의 벽사가면(사악한 기운을 쫓아낸다는 가면)은 헤이안 시대(일본 고대 말기)에 지금도 절분입춘 전날 콩을 뿌려 잡귀를 쫓는 행사인 절분 때 등장하는 ‘방상시’ 가면이 있다. 눈이 네 개가 있는데 한국에서 이러한 방상시 가면이 창덕궁에서 발견되었다고도 한다. 방상시는 귀신을 쫓아내는 역을 하는 가면이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역할은 역시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정리=박성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