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꽃비 흩날리다
[교단에서] 꽃비 흩날리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4.05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미선 (교사, 시인)
 
 


생각보다 행동인 아이들에겐 늘 ‘왜요?’가 따라다닌다. 머릿속에 ‘왜요?’는 가만히 있지 않고 입으로 불쑥불쑥 탈출한다. 그래서 교실은 27명의 ‘왜요?’가 늘 함께 꽃비 되어 흩날린다.

4월이다. 교정에는 민들레, 제비꽃, 무스카리, 수선화, 향기 패랭이, 붉은 동백, 흰동백, 자목련, 벚꽃, 서양수수꽃다리, 철쭉이 출석해 있고 수많은 꽃이 될 싹이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고 있다. 연못에 금붕어도 이제 춥지 않다며 지느러미를 살래살래 흔들며 좋은 듯 돌아다닌다. 이제 그네들을 맞으러 우리 아이들이 자주 오리 떼처럼 줄지어 간다. 신나게 재잘재잘하며 이름도 불러 주고 눈인사도 하다 햇살 한 모금 바람 한 모금하고 키 쑥쑥 마음 쑥쑥 자라도록 저축하고 온다.

학교의 교정은 사계절 학습터가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처럼 아이들이 교정에서 만나는 꽃, 나무, 곤충, 새들에게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면 하나의 몸짓일텐데 우리는 이름을 익히고 이름을 불러 주며 마음에 담는다. 이른 봄부터 꽃이 필 자리를 마련한 따뜻한 손길이 있어 올해도 풍성한 사계절 학습터에서 아이들과 축복을 누릴 준비가 되었다.

지난주는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의 꽃잎이 바람결 따라 꽃비 되어 한동안 흩날렸다. 아이 손잡고 나들이 온 동네 어른들도 꽃비를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떨어지는 꽃잎을 잡기도 하였다.

“얘들아,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데요”라고 했더니 27명의 아이가 휘날리는 꽃잎을 앞다투어 잡으려고 꽃처럼 뽀얀 두 손을 벌린 채로 꽃잎같이 나풀나풀 흩날렸었다. 이제 추위도 어느 정도 가시었으니 앞으로 나비를 비롯하여 곤충들이 교정에 출석할 것이고 우리는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줄 예정이다.

사계절 교정 학습터에서 함께하던 아이들은 생각이 자라날 거다. 친구 몸에 손 대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먼저 때려 놓고 생각하던 아이가 ‘친구는 모두 꽃이란 걸’ 알 때까지, ‘꽃은 눈으로 보는 거란 걸’ 알 때까지….

허미선 (교사,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