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6]바젤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6]바젤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04.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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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몇 번이나 스위스행 티켓을 구입 했다. 스위스 여행은 이게 도대체 여행인지 훈련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큰 도시를 여행하는 일과 사뭇 다르다. 다리가 퉁퉁 붓도록 바쁘게 다니지 않아도 되고, 꼭 보아야 하는 관광명소나 먹어봐야 할 음식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한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은 탓에 한 유명 체인 슈퍼에서는 우리나라 제품 컵라면을 팔고 있어서 입맛에 맞지 않는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 했고,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기도 했으며 거의 하루 종일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기도 했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방법은 참으로 단순하다. 걷고, 오르고, 보기만 하면 그림 같은 풍경은 덤이다. 광활한 대 자연. 신이 내린 선물과도 같은 이 자연 곁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스위스 사람들을 보며 자연의 관대함을 느낀다. 코로나가 전 세계의 관광업을 망쳐놓기 전까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았을 스위스는 모처럼 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위스 문화예술의 중심지 바젤

스위스를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천의 그림 같은 풍경에 매료되어 액자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일을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문화적 교류가 가장 많은 도시인 ‘바젤’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과 접해 있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바젤에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미술관인 바젤미술관을 비롯해 40여개의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문화적 수도로 여겨지는 바젤에서는 매년 6월 아트바젤(Art Basel)이 개최된다. 이 행사는 전 세계의 유명 갤러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다. 1970년 바젤의 몇 갤러리스트들이 작품 구매자를 찾는 플랫폼을 만들었던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지역 사회의 기업들과도 협력하여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물관 등의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 수집가, 미술 애호가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트바젤은 살아있는 미술시장인 셈이다.

올해 행사는 9월로 예정 되어있는데, 코로나의 종식이 아트바젤의 개막을 도와 전 세계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젤 미술관, 한스 홀바인 컬렉션 주목

스위스가 유럽의 저명한 미술관과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바젤 미술관의 관람은 스위스 미술관의 운영, 전시 방법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바젤 미술관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하는 한스 홀바인 컬렉션은 전 세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바젤 미술관은 아머바흐(Amerbach) 가문의 소장품들을 기초로 설립 되었다. 바젤의 법학자였던 보니파시우스(Bonifacius Amerbach)는 홀바인의 작품을 포함해 많은 예술작품을 수집했다. 이 소장품들은 가문 대대로 전해지다가 바젤시에서 구입하여 1661년 대중들에게 공개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 공공 미술관의 시초가 되었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나날이 확장 되어 현재는 약 30만여점의 작품을 보유 하고 있다.

◇‘父子 화가’ 대·소 한스 홀바인

스위스에서 한스 홀바인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는 본래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이다.

화가였던 아버지와 이름이 같아서 둘을 구분하기 위해 소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아버지에게는 ‘대’ (Hans Holbein the Elder)라고 표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화와 초상화에 능했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운 홀바인은 바젤로 거처를 옮겨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간다. 홀바인은 바젤에 체류 중이던 신학자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와 친분을 쌓았는데 이는 홀바인이 영국에서 활동 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된다. 에라스무스의 추천서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간 홀바인은 ‘유토피아’를 저술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후원을 받으며 영국의 인문주의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꽤 명성을 얻은 후 바젤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에 도시는 종교개혁의 중심이 되어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더욱이 즈빙글리(Huldrych Zwingli) 같은 종교 개혁가들로 인해 신교권이 된 바젤은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 교회를 위한 장식과 종교화가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홀바인은 구교와 신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주문을 받았지만 종교화의 주문은 급격히 감소했고 후원자마저 줄어들자 그는 다시 한 번 영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영국행은 홀바인을 16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가로 거듭나게 한 옳은 선택이었다.

◇영국 왕실과 홀바인의 초상화

홀바인이 다시 찾은 영국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헨리 8세(Henry VIII)가 있었다.

헨리 8세에게 6명의 왕비가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첫 왕비였던 캐서린 아라곤(Catherine of Aragon)과 교리에서 금기시 된 이혼을 하고 싶었던 왕은 급기야 교황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영국 성공회를 창시하여 그토록 바라던 앤 불린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왕의 재혼을 반대하던 토머스 모어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홀바인은 새로운 후원자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상대는 왕비가 된 앤 불린과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토머스 크롬웰이었다. 헨리 8세의 곁에서 실권을 잡은 크롬웰은 영국에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에도 결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홀바인은 크롬웰의 지지와 후원이 꼭 필요 했다. 1536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궁정화가가 되면서 왕가를 상징하는 그림과 왕실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중에 단연 주목해야 하는 그림은 헨리 8세의 초상이다. 오늘날 헨리 8세의 가장 대중 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이 초상화는 위엄 있고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표정에서는 다소 거만함도 느껴진다. 역사상 수많은 초상화가들 중에 한스 홀바인이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훌륭한 초상화가로 평가 받는 이유는 뛰어난 관찰력과 세밀함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헨리 8세,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토머스 크롬웰의 초상 등 오늘날로 따지자면 영국왕실의 사진사와 같았던 홀바인의 궁정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네 번째 왕비를 맞아들이기로 한 헨리 8세는 새 왕비를 맞아들이기 전에 홀바인 같은 궁정화가들을 파견해 이른바 왕비 후보감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다. 크롬웰이 성사시킨 클레베의 앤과의 결혼협상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과 정치적 동맹을 맺기 위한 것이었다. 홀바인이 그려온 앤의 모습을 보고 한껏 들떠 있던 헨리 8세는 앤을 실제로 만난 후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크롬웰은 앤과의 결혼을 부추기고 미모를 과장하여 전달했다는 오명을 쓰고 왕의 신임을 잃고 말았다.

앤을 그린 홀바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왕이 홀바인을 직접 문책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분명 홀바인 또한 왕의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게다가 든든한 후원자였던 토머스 크롬웰이 자신의 그림 때문에 몰락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 홀바인의 처지도 꽤나 난처했을 듯싶다. 그나저나 클레베의 앤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진다. 홀바인이 최선을 다해 그렸을 헨리 8세가 그리 미남형은 아닌 것 같은데, 만약 홀바인이 앤을 과장하여 아름답게 그렸던 것 이라면 헨리 8세의 실제모습은 어떠했단 말인가.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할지, 보정해서 그려야 할지 그것이 문제로다!

주소: ST. Alban-Graben 8 CH-4010 Basel

운영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26CHF (한화 약 3만원), 13세 이하 무료

홈페이지: https://kunstmuseumbase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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