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결’의 미학
[경일포럼]‘결’의 미학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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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우리말 중에 아름다운 말 하나가 있다. 바로 ‘결’이란 말이다. ‘결’의 사전적 뜻은 잠결, 얼떨결과 같이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도 있지만 그 가운데 무늬를 뜻하는 ‘결’을 나는 좋아한다.

‘결’은 무늬이고 리듬이고 잠시도 머물지 않는 시간이다. 결의 끝소리가 흐름소리인 ‘ㄹ’로 되어 있어 살아 있는 소리다.

결이 하나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한결같다’라고 한다. 모든 것이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처음처럼 끝까지 변하지 않는 것을 두고 ‘한결같은 마음이다’라고 한다. 굳이 어려운 한자어로는 초지일관이요, 일편단심이라고나 할까. 한결같은 마음이 아름다운 것처럼 세월을 새긴 ‘나뭇결’이 아름답고, 가지런한 ‘머릿결’이 아름다우며 눈이 부시는 고기 ‘비늘결’이 아름답다.

태풍으로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두고 우리는 ‘물결’이라 하지 않는다. 물결은 어린애 조잘거리는 소리이고 물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봄바람이다. 햇살을 안고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은 ‘실물결’은 잠자는 귀여운 아이 같다.

햇살을 안고 조용히 나뭇잎을 타고 흐르는 ‘바람결’이 좋다. 봄에는 여인의 머리를 흔들고 뭇꽃들을 흔들어대는 ‘봄 바람결’이 좋고, 가을에는 무덥던 여름 더위를 밀어내고 고개 숙인 코스모스를 어루만져주는 ‘가을 바람결’이 좋다. ‘봄 바람결’은 사랑하는 사람이 얼굴을 만지듯 따뜻하고 ‘가을 바람결’은 떠나보내는 그리움을 안겨주듯 서늘하다.

어린이의 ‘숨결’은 새근새근 안정되니 평화롭다. 그러나 마음이 거칠고 화가 날 때는 숨결이 고르지 못하다. 그래서 ‘숨결’은 생명이다. 숨결이 고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고요하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고요한 숨결을 듣고 자각한다. 그래서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숨결에 온전히 집중하여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난다.

시간의 ‘결’은 동적이라 잠시도 멈춤이 없이 변한다. ‘물결’과 ‘숨결’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서 아름다움을 지어낸다. ‘꿈결’은 무상하고 ‘잠결’은 순간이니 ‘결’은 가늘고 짧게 스치는 시간이다. 그래서 꿈결이나 잠결 속에는 애잔하고 그리운 마음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꿈결에, 잠결에 가늘게 잠시 왔다가는 것처럼 말이다.

한쪽 결로 자란 ‘잔딧결’은 곱고 아름다우나 결이 섞여 있는 ‘잔딧결’은 아름답지 않다. 잘 갈무리된 마음을 ‘마음결’이 좋다 하고, 한결같이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소리결’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부드러운 ‘손결’이 있고, 눈이 부시는 아름다운 ‘살결’이 있으며 포근한 ‘몸결’이 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사랑하는 이의 긴 ‘머릿결’도 좋다. 티 없이 푸른 가을하늘 같은 맑은 ‘눈결’이 있고, 예쁜 소리로 고운말을 하는 ‘말결’이 또 있다.

우리는 순한 결대로 살아가야 한다. 순(順)결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나 역(逆)결은 거칠고 아름답지 않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다. 순리에 거스르지 말고 순(順)결로, 천(天)결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세상은 여러 결이 서로 뒤섞이니 너무나 어지럽고 흉흉하다.

이럴 때 우리는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정치인도, 부부도, 연인도, 친구도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우리말 ‘결’을 좋아한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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