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7]사천 두량마을 둘레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7]사천 두량마을 둘레길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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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김상옥 시인의 시 ‘사향’ 일부-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특히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에겐 그 고향은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쇠몰이를 하던 여시골엔 어린 날을 소름 돋게 하던 전설이 고여 있고, 진등재, 상여골, 다랭이논 등 마을마다 비슷한 이름들이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중년에 이른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김상옥 시인의 ‘사향’에 나오는 내용처럼 봄이 오면 뒷산 진달래가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고, 누나를 따라 쑥, 냉이, 광대나물, 쑥부쟁이 등 봄나물을 캐러 다니던 고향이 새삼 그리워진다.

필자의 지인 중 한 분이 사천 두량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가끔 농장에 들르면 이런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두량마을은 풍경이 아름답고 살기도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태어나 자란 고향과 무척 닮은 마을이다. 봄을 맞아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두량마을 둘레길을 찾아 나섰다.

 
 
◇담벼락마다 봄꽃 활짝 핀 꽃동네

진주와 경계를 이룬 사천 두량저수지까지는 승용차로 20분이면 충분했다. 두량저수지는 자주 갔지만 두량마을 둘레길은 처음이다. 설렘 반, 염려 반을 안고 둘레길을 출발했다. 두량저수지-두량6리 벽화마을-두량3리 효열문 마을-두량 뒷산 둘레길(임도, 소나물길, 대숲길)-느티나무 보호수-두량저수지-(승용차 이용)-두량5리(실타고개, 아홉 살 골짝)까지 총 8km를 탐방했다.

수문 공사가 한창인 두량저수지 옆 두량생활환경숲을 지나 저수지 수변길을 따라 갔다. 가지를 늘어뜨린 채 막 피기 시작하는 능수벚꽃이 맨 먼저 필자를 반겨 주었다. 광대나물꽃과 민들레꽃이 발돋움을 하며 피어 있는 논두렁 옆 시멘트로 포장된 도랑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니 두량6리 벽화마을에 닿았다. 담벼락 벽화에는 온통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꽃동네다. 마을길을 따라 좀더 들어가니, 벽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마을을 환하게 밝혀 놓고 있었다. 마을의 약도, 서당에서 훈장님한테 혼나고 있는 학동의 모습,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모습, 홀태에 벼를 훑고 있는 농부, 베틀에 않아 베를 짜고 있는 여인, 풍물놀이하는 모습, 해와 달, 우주 그리고 마을이 하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여러 개의 원, 얼굴보다 더 크게 그려놓은 어린이들의 웃음 등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목을 끄는 그림은 우물가에서 한 아낙이 나그네에게 물바가지를 건넨 뒤, 돌아선 채 곁눈질로 남정네를 엿보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그림들이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예술성 또한 매우 뛰어났다. 꽃동네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꿈과 주민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잘 표현해 놓았다.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필자의 마음이 봄꽃으로 활짝 피어남과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벽화마을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자 두량3리 효열문 마을에 닿았다. 도로변에 서 있는 효열문(孝烈門)은 임진왜란 때 목숨을 잃은 조흡의 아내 동성 이씨와 며느리 안동 권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산중으로 피난 간 고부(姑婦)가 왜적에게 잡혀 끝까지 정절을 지키려다 왜적이 시어머니를 죽이려 하자 며느리가 자신의 몸으로 가로막았으나 결국 왜적의 칼에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며느리의 의로운 행동에 감동한 왜적이 ‘어떤 사람의 며느리면 효부이고, 어떤 사람의 딸이면 효녀이다’라고 쓴 팻말을 시신 옆에 세워 두었다고 한다.

효열문 옆으로 난 고샅길을 따라 마을 뒷산으로 가는 길에 양봉장 하나가 있었다. 꽃향기를 맡은 벌들이 채밀하기 위해 잉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를 넘자 잘 닦인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 양켠에 만개한 벚나무들이 도열해서 필자를 맞아 주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온산이 악기가 된 듯 신비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잎이 돋아는 숲에서 상쾌한 냄새가 풍겨왔다. 박새와 딱새 등도 필자의 발걸음에 맞춰 노래를 불러 주었다. 숲길은 소리와 향기, 빛깔이 어우러진 봄의 향연장이었고 둘레길에서 내려다본 두량마을은 온통 꽃세상이었다.

 
 
◇두량공단에 묻힌 전설

둘레길을 걸어 내려와 효열문 주인공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수령 430년이나 된 느티나무 아래서 잠깐 쉬었다가 두량저수지로 걸어갔다. 승용차를 이용해 ‘아홉 살 골짝’과 ‘실타고개’ 전설의 배경무대인 두량5리로 향했다.

옛날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시집만 가면 남편이 죽어 그 숫자가 무려 아홉이나 되었다고 한다. 골짜기 중간중간에 하나씩 묻으니 결국 무덤이 아홉 개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아홉 살(煞) 골짝으로 불리게 되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서방을 묻고 마을을 떠나려는 여인에게 마을사람들이 다시 한번 시집을 가라고 권하자 그 여인은 ‘아이고, 인자 실타(싫다)!’ 라고 하며 고개를 넘어갔는데 그 고개를 실타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타고개와 아홉 살 골짝은 모두 두량공단에 들어가고 기구한 삶을 살다간 여인에 대한 전설은 공장 굴뚝 연기로 사라져버린 듯해 무척 아쉬웠다. 산과 들, 꽃길이 있는 마을은 모두가 고향 같다. 마을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아름다운 전설이 봄빛으로 되살아나길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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