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스마트폰과 빨래방망이 사이
[경일시론] 스마트폰과 빨래방망이 사이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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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스마트폰에서 전화를 걸거나 받으려면, 전화기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된다. 그런데 스마트폰 속 그 아이콘, 송수화기 그림을 보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해보고 꽤나 놀란 적이 있다. 실제로 10대 혹은 20대 중후반 친구들에게 전화 걸거나 받는 제스처를 취해 보라 하면, 엄지와 네 개의 손가락을 마주 구부려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 모양을 만든다. 스마트폰을 잡고 귀에 대는 모습이다. 하지만 구닥다리 폴더폰을 써봤던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가 집전화기와 공중전화를 써본 세대라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을 구부려서 옛 전화기의 송수화기 모습을 만들어 보인다. 전화기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과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편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파일을 저장하는 것을 나타내는 아이콘은 예전 3.5인지 플로피디스크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제는 30대 초반만 해도 그 모양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플로피디스크라는 것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플로피디스크 모양의 아이콘은, 왜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클릭하면 저장 명령을 내리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세대를 좀 많이 거슬러 올라가보자. 진주의 어른들을 만나 뵈면, 진주 남강 빨래터에서 들리던 빨래방망이 소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이 꽤나 많다. 하다못해 ‘진주난봉가’에도 ‘진주 남강 빨래가자’라는 가사가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친구들, 아니 40대 정도만 해도 빨래방망이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세탁기 광고를 할 때 드럼통 안의 빨래 방망이 기능을 언급할 때가 있으니, 그런 명사를 들어는 봤을 테지만 전래동화 일러스트나 화보 자료를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기 힘들 것이다. 십여 년 전 교과서에 실려 있던 유명한 글 ‘방망이 깎던 노인’은 삭제된 지 오래다. 교사가 빨래방망이가 뭔지 설명해줘도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빨래방망이는 민속박물관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유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거지, 손이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형태를 꿈꿀 수 없는 건 당연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세탁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러한 점을 놓치기 일쑤다. 젊은 친구들이 편한 것만 찾고 나약해졌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느니 하는 뻔한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특정 세대를 놓고 ‘XXX’라고 대놓고 비하하는 세대론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자. 경험하지 못했는데 그 이전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경험담으로, 매체 속에서, 그리고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그래봤자 그건 젊은 친구들에게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앞선 세대의 경험을 전수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세탁기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되는데 방망이 두드리는 요령을 누가 알고 싶을까?

발터 벤야민은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구분한 유명한 글을 남겼다. 체험은 개인적이지만, 그 체험이 다음 세대의 필요에 의해 전승될 수 있을 때에서야 그것은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기성세대의 경험이 유의미한 경험으로 전승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차이로 전화기라는 문물을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는지, 폴더폰이나 집전화기를 먼저 접했는지에 따라 전화 거는 흉내를 내는 모습이 달라지는 시대에, 기성세대가 가치를 두는 삶의 지혜나 노하우들은 구시대의 차력 쇼에 가까운 자랑이 돼버리기 일쑤다. 그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노인들이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던 시대는 이미 옛날에 지났다. 경험이 전수될 수 있으려면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어른의 ‘경험’이 필요 없어졌다. 어른들에게 배울 것이 없는데 특정 세대를 비난하는 세대론은 옳지 않다. 이제 우리 사회에 진짜 어른을 만들려면, 아니 기성세대가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체험과 그들의 어려움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걸 함께 나누고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옳다. 사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온 지 한참 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유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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