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우포 왕버들 군락과 개발예정지 왕버들 묘목
[경일포럼] 우포 왕버들 군락과 개발예정지 왕버들 묘목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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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
전국 최대 규모의 습지인 창녕 우포늪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은 왕버들 군락이다. 생김새도 제멋대로 생겼고, 서 있거나 누워있거나 쓰러져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3월이면 새싹이 일제히 돋아나면서 연두에서 출발하여 초록으로 가기 위해 하루하루 달라지는 색깔의 향연이 펼쳐진다. 왕버들은 물이 얕아질 때 가지를 한껏 휘어지게 꺾는다. 수면에 닿을 듯 휘어진 나뭇가지와 조용히 먼 산을 보고 있는 왜가리, 날쌔게 날아가는 물총새들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시인 손남숙은 마치 한 나무에서 나온 것처럼 다른 나무들과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왕버들 수십 그루를 보고 거기 있는 모두가 거대한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무의 수난은 아마존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왕버들이 난데없이 투기 현장에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특히나 어린 묘목이 그런 처지에 몰려서 더 딱하다. 지난 2월 24일, 국토교통부는 경기도 광명·시흥을 여섯 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은 그곳에 땅을 사놓았다. 온 국민이 코로나 사태와 심각한 주택난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그들은 직장에서 얻은 정보로 그것도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수십억 원의 은행 대출을 받아 미리 개발예정지 토지를 매입했다. 정부를 대신해 토지수용·개발하는 기관인데 공적인 업무를 하면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심지어 자기들이 구입한 밭을 갈아 엎고 그곳에다 교묘하게 왕버들 묘목을 빽빽이 심어서 나무 보상을 통해 더욱 많은 돈을 벌려고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나무 보상은 주당 이식 비용의 2배를 우선 보상한다. 나무를 파는 데 드는 비용과 다른 곳에 심어야 하는 비용을 더한다. 현장에는 1㎡의 땅에 25주가량의 나무가 180~190㎝ 간격으로 촘촘히 심어져 있는데 제대로 키우려면 한 평(3.3㎡)에 한 주가 적당하다. 많은 보상비를 받기 위해 비좁은 땅에 심어진 어린 왕버들은 숨쉬기도 벅찼을 것이다. 왕버들은 1년에 1m 이상 키가 크는 속성수여서 시간이 갈수록 감정가가 높아진다. 순하고 순한 왕버들을 돈벌이에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심었다. 계획대로 개발보상금이 지급되었더라면 포클레인으로 왕버들 묘목을 밀어버렸을 것이다.

돈을 탐내는 사람들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광명시흥 신개발지구의 왕버들과는 정반대로 경북 청송과 청도, 성주에 있는 400년 된 왕버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물 대접을 받고 있다. 청송 관동에 있는 왕버들은 환생이야기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처녀의 늙은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총각이 대신 나가면서 뒤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며 그 정표로 왕버들을 심고 떠났다. 전쟁이 끝났으나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리던 처녀는 왕버들에 목을 매었다. 그녀가 죽은 자리에 소나무가 싹이 터 자랐다. 지금도 왕버들과 소나무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나무에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나무에 동네의 사연을 담기도 했다. 왕버들은 엄연한 인격체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광명시흥에서는 대접은커녕 어린 왕버들이 부동산을 향한 욕망열차에 치였다. 어린 왕버들이 너무 불쌍하다. 억울한 왕버들의 목권(木權)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외지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저지른 개발예정지 농지거래의 전국 실태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전점석(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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