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34]니우에 아일랜드(中)
도용복의 세계여행[34]니우에 아일랜드(中)
  • 경남일보
  • 승인 2021.04.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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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호호 하하~ 까르르륵~” 마치 아이들이 장난치며 노는 듯한 소리가 거실에서 들렸다. 이들의 아침은 보통 새벽 일찍부터 시작된다. 그렇다고 밤에 일찍 자는 것도 아니다.

나도 통행금지 시절, 12시부터 4시까지만 자던 게 습관이 돼 있어서 4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져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다가올 하루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명상에 잠긴다.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고 현재 몸 상태 등을 체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 한국에 돌아가면 나누고 싶은 것들이 이곳에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거실이 조용해졌다. 제이니 부인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근육질의 그의 남편 왓데 씨는 세면실에서 나왔다. 긴 머리가 어깨까지 덮었는데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맸는데 장정(壯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늠름해보였다.

“잘 주무셨어요?”, “굿, 아주 좋았어요. 오늘 무엇이 하고 싶으세요?”, “그냥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싶어요”,

왓데는 자신을 출근시켜준 뒤 내가 차를 이용하도록 배려해줬다. 제이니가 준비한 시리얼과 오트밀로 배를 채웠다.

차량의 창문이 열려 있어 왜냐고 물었더니 고장 났다 했다. 클러치가 있는 수동기어 차량이었는데, 시동을 거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차에서 내려있을 때는 엔진을 연결하는 배터리와 시동 전선을 띄워두고 발전기와 연결하는 시동전선을 꼬아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 문을 열어 놓은 것은 도난방지를 위한 역발상인가 생각했었다. 문이 열려 있으면 귀중품이 없다는 뜻이니 도둑이 굳이 문을 열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뭐 그런….

그런데 니우에는 도둑질이 없기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외국에선 잠시 두고 내린 핸드폰도 곧바로 잃어버리기 일쑤였는데 의외였다.

“어떻게 확신해요, 왓데? 도둑질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하하 레미, 니우에 아일랜드에는 교도소에 죄수가 없어요. 그 말은 죄짓고 사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머리를 둔기로 맞은 느낌이었다. 교도소에 죄수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에요?”

차로 이동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첫 번째 보이는 공장형 건물이 왓데의 직장이라고 했다. 직장동료들은 왓데보다 키나 체격은 작았지만 근육질이었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굳이 안에까지 들어가지 않았지만 왓데의 친구들은 바깥에서 차를 내린 왓데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나에 대해 묻는 듯 했다.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들어가는 모습으로 미뤄 왓데가 리더인 듯 보였다.

왓데를 내려주고 나니 머릿속엔 ‘죄수가 없다’는 말이 뱅뱅 돌았다. 교도소에 죄수가 한명도 없는 나라. 니우에 아일랜드. 내 눈으로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동 차량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클러치를 조금만 조절해도 시동이 꺼질 듯 했다. 언제든 그런 위험이 상존했기에 조심해야했다.

교도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찰서다. 운이 좋게도 경찰서는 왓데의 집 주변에 있었다. 규모가 꽤 컸던 기억이 나서 나는 이곳에 경찰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치안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경찰서 앞에 내렸다. 니우에아일랜드의 경찰 체격이 우람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교도소를 가보고 싶어서요”, “네? 교도소를요?”, “저는 지금 오세아니아 18개국을 돌며 여행을 하고 있는데 니우에는 감옥에 죄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왔어요”, “맞아요, 니우에 감옥에는 죄수가 없어요. 한번 가보세요. 저쪽으로 가면 웅아(코코넛크랩)조각상이 있어요. 그 뒤에 작은 건물이에요.”

가는 길에 재미있는 게 많이 보였다. 일반 가정집에 아침마다 빵을 구우면서 빵집이라고 대문에 걸어두면 빵집이 되고,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어서 그린 작품이 몇 점 소지하면 화방이나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웅아 조각상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도심이라고 해봤자 2㎞정도 일(一)자로 길게 난 길에 듬성듬성 정부시설 건물 하나, 렌터카 샵 두 개, 교회, 마트 하나, 휴대폰 가게 하나, 시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웅아 조각상 바로 옆 큰 철제 건물이 보였다.

교도소를 무섭게 지어놓아서 아무도 죄를 안 짓게 되는 건가 생각할 정도로 음침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경찰 차량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에에엥∼에에엥∼’ 이 한적하고 조용한 나라에서 사이렌이라니, “Stop!” 경찰관은 호전적인 표정을 짓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멈추라고 했다. ‘헉∼’ 숨이 멎는 듯했다. ‘분명 다른 경찰은 교도소에 가 봐도 된다고 했는데 왜 이러는 걸까?’ 이 차 주인이 왓데인 걸 알고 차 도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치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별수 없이 손을 든 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교도소. 교도소 보러….”

더듬더듬 대답하자, 그는 표정을 풀었다. 그러면서 “이곳은 생선공장이고 그 옆이 교도소다”고 일러주었다. 따라오라 손짓한 뒤 경찰이 앞장서 갔다. 큰 덩치에 걸음도 굉장히 빨랐다. 그는 교도소 앞에 닿아 지금까지 강압적으로 말한 게 미안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마음껏 보라”고 했다.

교도소 철창 안에는 침대 하나와 세면대, 변기가 있는 방이 보였다. 나머지 방에는 잡동사니만 쌓여 있었다.

“경찰아저씨~! 실례할게요.”

경찰 아저씨를 부르자 살짝 비켜 주었다. “여기는 들어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창고처럼 쓰고 있어요. 죄를 짓는 일 자체가 없는 나라다 보니 그래요”라고 다소 자랑스러운 듯이 얘기했다.

실제 이곳 교도소에는 죄수가 없었다. 나는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뭔가 죄수들의 흔적이라도 남은 게 있는지 찾으려는 것처럼…, 그러나 헛수고였다. 외려 다시 한 번,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의 기준, 나의 생각대로만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 회한 그런 것이리라.

그런데 내 입에선 의도하지 않은 말이 새나왔다. “그러면 저는 집이 없는데, 여기서 자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냥 쓰세요, 정비해서 마음대로 쓰세요.”

니우에에 다시 한 번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무상임대 ‘나의 집’이 누우에에 생긴 것이다. 나는 니우에 아일랜드에 집 있는 남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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