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7]그림속의 튤립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7]그림속의 튤립
  • 경남일보
  • 승인 2021.04.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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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 Fields near The Hague_클로드 모네_1886년작_반고흐미술관

그 어느때 보다도 긴 겨울을 보냈다.

겨우 내내 모든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섭리지만, 지난겨울은 사람 사는 세상도 우리네 마음도 그러했다. 만남을 자제해야 하고 모두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현실은 사소한 것을 그립도록 만들었고, 너무나 당연했던 평범한 일상을 고프게 했다.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봄꽃에 마음껏 취하지 못한지도 어언 2년째다.이 곳 네덜란드의 튤립도 카메라를 들이밀며 황홀한 눈빛으로 쳐다봐주는 관광객이 없으니 무척이나 처량해 보인다. 이토록 쓸쓸한 튤립이라니. 매년 3월의 끝자락부터 5월 초까지 어김없이 네덜란드의 평야가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세상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열심히 피어났을 수선화, 히야신스, 튤립이 파란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산수유, 매화, 벚꽃이 그리워 질 때 네덜란드의 봄은 내게 언제나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올 봄에는 꽃이 피어난 것이 신기 할 만큼 자주 우박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우리가 아직까지 어려운 상황과 싸우고 있듯 봄도 아직 겨울을 밀어낼 힘을 갖지 못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내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고개를 내민 꽃들이 참으로 기특하다. 오늘은 박물관이 아니라 꽃밭에서 편지를 쓴다. 이 편지 안에는 조금 더 힘내야 할 우리를 응원하는 풍경화 몇 점이 담겨 있다. 비록 방구석 꽃놀이가 될 테지만 그림 속의 꽃은 내년 봄이 다시 찾아 올 때 까지 우리 곁에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Tulip Field in Holland_클로드 모네_1886년작_마르모탕 미술관
Tulip Field in Holland_클로드 모네_1886년작_마르모탕 미술관


◇튤립에 흠뻑 취한 모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지천에 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네덜란드를 다녀간 간 것은 우리에게 매우 행운인 일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모네가 곧 바로 붓을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모네의 시선에서 표현된 네덜란드의 튤립 밭을 여러 점의 그림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풍차와 튤립이 담긴 그림들은 단번에 여기가 네덜란드임을 말해준다.

튤립 밭은 모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것이 틀림없다. 그는 꽃과 정원을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잘 배열된 꽃 밭 전체를 나타낸 시도는 네덜란드에서의 그림들이 유일하다. 모네는 이곳에 머물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색상으로는 눈앞의 풍경을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캔버스 위를 덮은 온갖 색상들이 그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대신 한다. 마치 모네가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를 튤립 밭으로 초대하는 것 같지 않은가. 재배 시에 물이 많이 필요한 튤립은 밭 옆의 운하를 통해 물을 공급 받는데 맑은 날에는 튤립이 물위에 투영되어 하늘거린다. 모네는 이 모습마저 놓치지 않고 물에 비친 하늘과 꽃을 표현했다.


◇고흐의 꽃밭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에게는 해바라기가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그 외에도 아몬드 꽃, 아이리스, 장미 등을 그린 고흐에게 꽃이란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고, 그림에 대한 끝없는 열망을 분출 할 수 있는 주제였다. 그렇다면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흐가 튤립 그림도 그리지 않았을까.

10년의 짧은 화가생활동안 8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고흐지만, 그의 해바라기처럼 튤립만 단독으로 그린 그림은 찾아 볼 수 없다. 튤립이 고흐에겐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꽃에 불과 했던 걸까. 대신 고흐도 모네가 그린 튤립 밭의 풍경처럼 네덜란드의 꽃밭을 그렸다. 어쩌면 모네가 그린 그림 보다 더 질서정연해 보이는 이 그림은 고흐가 헤이그에서 지내 던 때에 완성되었는데, 그의 화가 생활이 1880년부터 인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초기작에 해당된다. 고흐가 파리 화단을 뒤흔들어 놓았던 인상주의나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을 받기 전의 그림들은 대부분 거무튀튀하고 어두컴컴한 색상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옷을 입는 네덜란드의 봄은 고흐의 팔레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고흐는 꽃밭을 낮은 시점에서 시작하여 밭의 뒤쪽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믹한 장면으로 연출했다. 네덜란드 시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초가집은 꽃과 색상의 대비를 이루어 꽃밭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네덜란드의 풍경에 매료되어 매년 이곳을 방문해 작품 활동을 했던 독일 출신 화가 그로베(German Grobe,1857-1938)가 포착한 풍경에서도 봄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앞서 본 고흐의 그림과 구도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고흐의 꽃밭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Kleurrijk bollenveld bij Limmen_벤 피거스
Kleurrijk bollenveld bij Limmen_벤 피거스

네덜란드 풍경화가 벤 피거스(Ben Viegers,1886-1947)의 꽃밭도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벤의 작품을 보고 같은 장소를 방문하면 네덜란드에서 가장 예쁜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밭 뒤로 작은 교회와 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시골마을 풍경을 표현한 그는 네덜란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봄의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꽃 한 송이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보다 잘 정렬되어 있는 꽃밭을 그리는데 더욱 심취 했던 벤은 작업실보다 꽃밭에서 그림그리기를 선호 했다고 한다. 그림으로 꽃구경을 대신하는 오늘이 지나면 그림속의 꽃향기를 직접 맡을 수 있는 내년 봄이 꼭 오리라 믿는다. 오늘은 이 편지에 진한 봄기운이 오래 남도록 네덜란드 들판의 꽃향기를 묻혀 보낸다.

Bulb Fields_빈센트 반고흐_1883년작_워싱턴 내셔널갤러리

 
Fields of Tulip With The Rijnsburg Windmill 클로드 모네 1886년작
Bloemenveld in volle bloei 져먼 그로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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