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벗어 놓으면
한번 입어볼까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김영빈 시인의 ‘꽃, 사슴’
대조적인 것들은 대체로 어느 한쪽이 비애에 젖거나 애잔한 경우가 많다. 식물과 동물 자체가 비애나 애잔함을 띄는 대조일 수는 없지만, 봄날의 한 시공간에 있는 저 벚꽃과 사슴은 대조적이다. 본연대로라면 꽃과 사슴이든 벚꽃과 꽃사슴이든 미적 조화가 선행하기 마련 아닌가. 더욱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무엇인들 아름답지 않을까. 하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라서 저 두 이미지는 대조적이다. 혹한의 겨울을 건너온 어린 사슴의 몸에 궁기가 바짝 들었다. 털갈이까지 하는 중인데 하필 난분분 만개한 벚꽃 군락에 홀로 있다니.
사슴 또한 새봄을 맞는 중으로 외모는 곧 윤기 흐르겠다. 그런데도 벚꽃 만개한 방향을 ‘하염없이/바라만 보던’ 사슴의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애잔함이라니. 사슴아, ‘나무가 벗어 놓’은 옷이 아니어도 너도 지금 새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란다.(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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