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인연이라는 것의 소중함
[경일춘추]인연이라는 것의 소중함
  • 경남일보
  • 승인 2021.04.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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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영 (시인·마루문학회장)
 


이십여 년 전쯤 일이다. 모 방송국에서 가족 동요대회가 있었다. 1차 공모에 가사 15편 뽑고 2차 공모에서 선정된 가사에 곡을 입혀 녹음한 곡을 제출받아 최종심인 본선 무대서 노랠 부르는 경연으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요 대회 나가는 것이 꿈이었던지라 꼭 본선 무대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당돌하게 민요풍 노래를 잘 부르는 목소리를 가진 처자가 있으니 이 목소리에 맞는 곡을 입혀 주실 분 없겠느냐고 방송국 홈페이지에 공개부탁을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곡을 써주겠다는 이가 나섰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곡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까지 하고 참 좋았다. 가장 맘에 드는 곡은, 미국 샌디에고에서 보내준 ‘할아버지 우산 속’이라는 곡이었다. 음악학원에서 아들과 조카와 함께 동요 부르는 연습으로 부산을 떨며 그 곡을 방송국에 보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본선무대 오르는 상상을 하며 행복했다. 드디어 발표 날이 다가왔고 하지만 결과는 무참히도 본선무대는 커녕 후보 순위에도 들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멀리 버클리 음대생이 보내온 곡은 그렇게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소원 아닌 소원이었는데 그렇게 좌절을 맞고 실망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좋아라하는 동요이건만 뒤끝 작렬의 미운 마음에 그 방송국 동요는 들어보지도 않으며 세월을 보냈다. 소심한 보복으로 말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요대회는 이루지 못한 꿈으로만 간직하고 산다.

작년이다. 등단 십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그 고마왔던 그날의 인연이 불연히 떠올랐다. 졸작의 시집이나마 보내어 20년 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20년을 더듬어 보낸 연락이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다. 그리고 오히려 더 고마워했다.

그 여대생은 이후 미국에서 결혼했고 거기서 정착해 살고 있었다. 시집으로 다시 이어진 인연이 며칠 전 노래가 되어 날아왔다. 남편과 함께 시를 읽고 곡을 작곡한 것 중에 하나라며 보내온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국내의 유명 소프라노에게 아예 발표회에 함께하자 했다는 것이었다.

인연(因緣)이 그렇다. 에울 담(口)에 큰 대(大)가 인(因)이고 실 사에 끊을 단(彖)이다. 결국 담장 같은 제한된 삶 속에서 우연의 끈으로 이어져 그 끝을 이어가며 만드는 삶의 연결고리가 삶은 아닐지. 작은 원인이 선할 때 행복이 되고 작은 원인에서 서운해져 큰 악으로 변하는 게 인연의 이치라 여겨본다. 도처에 소홀함이라는 돼지의 코가 단(彖)을 끊더라도 그 끝을 이어가는 지혜가 우리의 삶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닐지!

안채영 (시인·마루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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