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당신은 0순위야!
[경일춘추]당신은 0순위야!
  • 경남일보
  • 승인 2021.05.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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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우리 집 장독대 옆에 대나무 숲과 어우러져 고들빼기 꽃이 노랗게 피었다. 나이 들면서 작고 소박한 들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노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눈길도 덩달아 흔들린다. 든든한 잎사귀 하나 없이 목만 쏘옥 빼내어 한껏 봄 햇살을 받는 꽃잎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기 몸에 알맞은 크기로 피워냈다. 이렇게 고운 빛깔을 어떻게 피워 올리는 것인지 보는 내내 신비함으로 마음이 벅차다. 그렇게 며칠을 내 마음을 붙들던 그 빛나던 꽃잎이 지려하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작은 고들빼기 꽃만큼 한순간이라도 삶을 아름답고 빛나게 피워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는 아름다운 적도 빛나던 열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피워 본 적이 없는 내 삶이 꽃잎이 지는 것 보다 더 쓸쓸하게 여겨졌다.

시골에서 내 성격대로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살고자 꿈꾸었지만 정작 불편한 현실의 나는 옹졸하고 감성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약간의 감정적이거나 다소 회의적이거나 아님 늘 현실 앞에서 허우적대며 스스로 지쳐버린 생활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유년, 학창, 청년시절 어쩌면 가장 많은 추억과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이었어야 할 20대 말까지 아니,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아팠다. 류마티스라는 관절염 때문에…, 아픈 나와 딸을 위해 늘 바쁘고 이웃까지 챙기는 남편에게 어느 날 딸하고 농담 삼아 나누었던 말이 문득 떠올라 남편에게 짓궂게 물었다. “당신의 마음속에 나는 몇 위예요?” 했더니 남편은 가볍게 건넨 말에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처음에는 씨익 웃더니 이내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며 신중한 표정이다. 무슨 말을 하려나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은 0순위야!” 라고 한다. 뜻밖의 대답이다. 1위도 2위도 아닌 영순위란다. 순위가 없는 무조건적인 뜻을 나타내는 의미라고 덧붙여 말해 준다. 기대 없이 농담 삼아 건넨 말인데 우문현답이다.

이렇게 남편과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때로는 티격태격 자잘하게 말다툼하는 남매처럼 때로는 응원해 주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말이다. 여전히 몸은 자유롭지 못하고 힘들지만 예쁘게 자라 준 딸과 건강하고 센스 만점인 남편과 하루하루 보내는 이 일상이 행복한 순간이다. 소중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을 나만의 잣대로 순위를 매기려는 나를 향해 들꽃이 말한다. 당신이 아프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순위를 매길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늘 어리석음은 내 몫이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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