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비 온 뒤 하늘 같은 아침
[교단에서]비 온 뒤 하늘 같은 아침
  • 경남일보
  • 승인 2021.05.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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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새날이 밝았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 꽃이 진 자리에 연초록 잎새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뭉쳐 새날을 찬란하게 만들고 있었네. 그 사이마다 세수하고 돌아온 햇살이 방글거리고 있었네. 교정을 돌며 새로 핀 꽃에게 인사하고 연못 속에 일찍 깨어난 금붕어에게 인사하였네. 나를 반기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준비가 되었네. 감사의 마음으로 ‘굿 모닝!’을 외칠 준비가 되었네.

선생님도 사생활이 있기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마음 준비를 한다. 물론 아이들이 나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채우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 밝아야 함께 하는 아이들 마음도 밝으리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입을 옷과 액세서리 하나도 더 신경을 쓴다. 한 주 동안 생동감 있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끔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옷의 장신구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트인 대화의 물꼬가 서로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월요일 아침엔 늘 별일이 없으면 좋겠다. 전화가 오면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더 미리 걱정이다. 월요일 아침 전화는 대부분 아이가 학교에 못 올 사연이 담기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힘든 월요일 아침이라 저학년 아이들은 가끔 학교에 안 가고 엄마와 함께 있겠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늦어도 좋으니 꼭 오라고 용기를 북돋워 놓고 기다린다. 학교에 오기만 하면 이런저런 학습활동에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더 좋은 것이다. 그 아이가 빼꼼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의 하루는 비 온 뒤 하늘 같다.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아침 활동 시간은 자유롭다. 실물화상기를 띄워 3월부터 그림책을 읽어 주었었는데 이젠 스스로 잘도 읽는다. 척추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알려 주었더니 모두 책을 세워서 두 손으로 잡고 읽고 있다. 아침을 여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행복하다. 책을 다 읽은 아이들은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클레이 찰흙을 꺼내어 조물조물 손 놀이를 하기도 한다. 30분의 행복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이 늘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아이들의 말이 뚝 끊기고 책장 넘기는 소리와 작은 부스럭거림이 고요를 만든다. 그러다가 책 속에 빠져든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키득거리며 중얼거리면 잠시 고요는 흔들렸다 돌아오기도 하는 행복한 아침이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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