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암별제 30주년 의미를 되돌아 본다
[기고]의암별제 30주년 의미를 되돌아 본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5.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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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진주검무보존회 이사·의암별제 집례)
 

 

의암별제는 운창(芸窓) 성계옥(成季玉)선생에 의해 1992년 복원 봉행되었으니, 2021년 올해는 복원 후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의암별제는 무려 세 번의 강산이 바뀌는 동안 단 한 번의 단절도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867년 진주목사 정현석은 진주 사람들이 의(義)를 숭상하는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의암별제를 창설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며 추모케 하였다. 1868년 처음으로 행례된 의암별제는 일반 유교식 제례와는 달리 제례의식에 악(樂) · 가(歌) · 무(舞)를 포함시킨 종합예술 형태를 갖춘 일종의 가무제였다. 이후 기생들로만 구성된 제관들에 의해 매년 6월 중 길일(吉日)을 택해 대규모의 의암별제가 행해졌다. 이후 일제의 식민지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진주지방에서 오랫동안 잊혀져가고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92년 의암별제는 처음으로 진주성 촉석루에서 복원 봉행했다. 이후 1999년의 의암별제는 젊은 층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하늘뒤집기’라는 부제로 여흥가무의 범위를 확대했다.

2009년 성계옥 선생은 돌아가셨지만, 진주민속예술보존회의 수장을 맡은 유영희이사장의 주도 아래 의암별제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의암별제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의암별제 복원봉행 때부터 함께 해왔던 10여명에 이르는 원로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불어 의암별제의 의의를 높이 평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진주시 당국의 덕분이기도 하다.

2020년에 이르러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의암별제를 치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의암별제가 지닌 상징과 역사성에 더 큰 의미를 둔 조규일 진주시장의 용단으로 행사를 대폭 축소하여 개최했다.

촉석루 누각에서 조촐하게 제례의식만 치루기는 했지만 의암별제를 단절 없이 이어갈 수는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의암별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수 없다. 따라서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온 세계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는 평화로운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의암별제는 앞으로 30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진주시만의 고유하고도 격조 높은 전통문화행사로 길이 역사에 남아 진주시민들의 자긍심으로 이어지기를 염원해본다.


김영숙 (진주검무보존회 이사·의암별제 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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