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백합(百合)꽃 피었다
[경일춘추]백합(百合)꽃 피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5.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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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 지기)
 

 

이 향기는 고향집에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너머와 내 마음을 잡아끌던 그 백합향기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 꽃을 얻어다 심으려고 할 때부터 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고향,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변변치 않은 곳에라도 옮겨 놓고 싶었던 것 같다.

고향 시골집은 부엌을 중심으로 앞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뒤꼍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뒤꼍은 좁고 담으로 둘러쳐져 그늘지고 습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뒤꼍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곳에는 어머니의 작품인 된장, 간장, 고추장, 장아찌를 담아놓은 장독대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또 남은 땅에는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푸성귀를 심어 놓으셨다. 그리고 이맘때면 담벼락에 붙여 심어놓은 금낭화, 함박꽃, 접시꽃, 백합꽃 등이 피어 있었다.

땅 한 뼘도 귀하던 가난한 시절이라 먹을거리 보다 뒤로 밀쳐진 뒤꼍의 꽃들은 어린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봐주거나 예뻐하지 않아도 꽃은 늘 해마다 피고 지곤 했다. 어머니의 손길이 흙과 만나 고운 마음결이 빚은 생명의 장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그 곳에 그것들이 있었음을 알았다. 어머니와 연결된 익숙한 공간으로 생생한 꽃이 눈에 들어오고 향기도 바람결에 전달되어왔다. 그 보다 한참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담벼락에 핀 그 꽃들을 기억하며 어머니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그것을 볼 줄 아는 분이셨구나!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담벼락 아래에서라도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었을 어머니의 마음….

학교 시절,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무엇하나 어머니를 닮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머니가 하시던 그대로 하고 있는 내 행동에 종종 소스라치게 놀라고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어머니 모습이 내 얼굴에 겹쳐질 때 놀랍다. 머리가 희끗하고 눈꺼풀이 처져가는 모습이 꼭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 모습으로 고스란히 닮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그대로 끓여먹고 있고, 고기를 넣지 않고 끓여주던 김치찌개를 여전히 즐겨먹고, 여름에는 김치나 푸성귀를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는 걸 좋아하고, 늘 담백하게 끓여주던 맑은 국물 요리를 아직도 좋아해서 내 남편이나 아이한테도 그대로 해주고 있다. 이렇게 생활 유전자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아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 있다. 지난해에 피었던 그 향기와 모양 꼭 그대로 올해도 백합(百合)꽃 피었다.

박종숙 (콩살림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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