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대구탕 속의 미나리
[경일포럼]대구탕 속의 미나리
  • 경남일보
  • 승인 2021.05.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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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고교 시절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970년대 중반의 부산에서 팔뚝만한 생대구 한 마리 값이 만 원 정도였을 터다. 그 당시에 교사나 공무원의 월급이 5만원이었다면, 아주 비싼 어물이다. 그때 생대구는 가정의 식재료라기보다, 대체로 남포동과 서면의 요정으로 갔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한물간 반값 대구라도 가정식으로 요리해 먹곤 했다.

잊힌 대구탕을 1988년 12월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에 고등학교 교사인 내가 동료 교사와 함께 처음 가본 서울 모처의 대구탕집. 이때부터 10년간 나는 꽤 자주 드나드는 단골이 되었다. 부산 대구탕이 한국산 생물을 맑은탕(지리)으로 만들어낸 겨울 제철음식이라면, 서울 대구탕은 북미산 냉동을 매운탕으로 끓어낸 사철음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후자는 짜가퉁이 대구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의 한 수가 있었다. 서울 대구탕에는 미나리를 듬뿍 넣었다. 아삭한 식감의 미나리가 끓는 탕 속으로 녹아들었다고나 할까? 어물 맛, 매운맛, 아가미 젓갈의 맛으로 된 사실상의 고향 맛에다, 서울식의 미나리 맛이 융합된 것이랄까? 어쨌든 고급의 대구탕을 저급으로 서민화 혹은 대중화하여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이 서울 대구탕인 셈이었다. 감기 기운이 들 때 반드시 찾아가면 결과는 언제나 ‘감기 뚝’이었다. 대구는 아가리 쩍 벌린 형상에서 큰 입 대구(大口)로 이름이 되었다. 한편 미나리를 가리켜 고려시대의 문헌에는 ‘수내립(水乃立)’이라고 적혀 있다. 미나리의 ‘미’가 물임에 틀림없다. 바다 속의 더덕 모양 같은 게 미더덕이듯이 말이다. 그럼, 내립이 무얼까? 나물이라고 짐작된다. 강진에서 유배하던 정약용은 초당 옆 시냇물을 끌어와 미나리꽝을 일구면서 물나물인 미나리를 길렀다. 농어탕과 전복회를 먹을 때, 파를 삶거나 미나리를 데쳤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나리는 서울의 것이 최고였다. 서울의 3대 특산물이라면, 마포 새우젓과, 왕십리 미나리와, 옥수동 쪽 한강변인 두모포의 콩나물로 통했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미나리는 ‘서울의 맛’(별건곤, 1929, 9. 27.)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내게 있어서 대구탕은, 비유컨대 한국과 북미, 부산과 서울, 어물과 나물이 이어주는 다문화적인 용광로였다.

얼마 전에, 영화 ‘미나리’가 크게 성공했다. 영화 속에서 미나리를 심던 윤여정은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다. 우리의 미나리가 미국으로 가 이식된 것은 우리나라 이주민이 타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린 것을 표상한다.

서울 대구탕을 경험한 1년 수개월 후에, 난 스스로 무직자가 되었다. 박사학위 논문 준비 때문. 이때부터 나는 사회경제적 지표가 바닥인 채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살아갔다.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사람들은 대개 그리움을 앓는다. 그 무렵의 내 그리움은 최근 젊은이들에게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그리움이랄 수 있었다.

요컨대는 대구탕이야말로 내 가난과 서러움을 달래준 한때의 소울 푸드였다. 소주 한 병과 대구탕 1인분은 그 시절 그리움을 대신해 주었다. 아주 오랜 만에, 그 집에 들러 대구의 살코기와 고니(혹은 알)와 미나리가 뒤섞인 맛을 음미할까나.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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