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아버지의 도시락
[경일춘추]아버지의 도시락
  • 경남일보
  • 승인 2021.05.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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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선 (문화예술인)
 


오월이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추억 속의 한날이다. 우리 동네에 일본식 주택이 몇 있었고 가끔 엄마 따라 이웃에 가보면 우리네 집과 많이다르다. 가구며 집기가 고급인 듯 전체적으로 나무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 기억된다.

해방 후 남겨졌던 일본식 집이리라. 이제 세월이 흘러 흔적이 없어지고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 면면이 기억이 아련한데 경험담으로 우리를 매료시킨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생애 중 청년 아니 청소년 시절이시다. 그때 그 시절 누구나 배고프고 어려웠을 시기, 만주로 가면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주로 향한다.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망을 벗어 날 수 없었기에 배를 타거나 기차에 오를 때면 여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본 보통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 덕분일까 간단한 소통이 가능했고 고비 고비마다 가슴 졸이며 만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정직과 신용이 좋다는 평판 속에 늘 책임감을 우선하는 분이셨다. 청년의 시기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에서 몸에 젖어 있는 생활습관이라 하셨다. 그런 생활 태도로 인해 고급 기술뿐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급료를 보며 고향 부모님께 논과 밭을 사드릴 부푼 꿈으로 고된 삶을 견뎌내셨다.

그런데 조선인이 돈을 가지고 여행길에 오를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당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실망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본인들의 손에 들린 양철 도시락이 눈에 띄었고 그것에 착안하여 묘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신다. 아버지는 만주에서 배 목수 기술을 배우셨고 도면부터 차근차근히 과정을 밟으셨는데 목선이 주를 이루었던 당시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지금의 컴퓨터처럼 정교한 조각을 맞출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시고 그 기술과정에서 아버지의 창의력이 계발된 것이다.

나무로 만든 도시락, 가장자리 네 곳에 구멍을 뚫었다. 돈(지폐)을 접어 넣고 다시 나무를 채워 넣었다. 나름의 검사를 거치고 드디어 고향길로 향한다. 긴장을 안고 기차에 오르고 청년의 손에 들린 도시락은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나기까지 땀으로 손을 적셨다 식혔다 반복한다. 마침내 고향이다. 아직 안도는 이르다 집에는 밤중에야 도착할 것 같다. 청년의 머리에는 온통 부모님의 기쁨에 가득 찬 모습과 이야기꽃으로 마주할 형제들의 반짝이는 눈망울로 행복감이 차오른다.

김순선 (문화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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