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뭣이 중헌디
[경일시론]뭣이 중헌디
  • 정영효
  • 승인 2021.05.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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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2016년에 개봉된 영화 ‘곡성’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극 중에서 딸이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라며 중얼거린다. 이에 아버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채근하자, 딸이 “뭣이 중헌디”라며 소리를 지른다. 개봉된 지가 벌써 5년이 지났다. 영화는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는 지금도 세간에 곧잘 회자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뭣이 중헌디”라고 부르짖는 분노의 소리가 가득하다. 국민이 그 어느 때 보다 생존권을 넘어 생명권까지 위협받는 나라가 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협이 위협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었던 끔찍한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발생한다. 생존권을 넘어 이제는 생명권이 위협받는 두려고 무서운 나라가 돼 있다. 영유아와 어린이를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학대·폭행을 넘어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것도 보호하고,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와 해당관계자에 의해 자행됐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사천에서는 7개월된 아이를 때려 의식불명에 빠지게 한 친모가 체포됐다. 화성에서는 양부의 학대로 입양한 두 살 여아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대전에서는 어린이집 원장이 2살된 여아 원생을 학대해 숨지게 했다. 구미에서는 3살된 여아를 방치해 사망케 한 친모가 구속됐다. 계부가 초등학생 딸을 학대해 숨지게 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높은 가운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연일 터진다.

‘그냥 살인과 그냥 폭행’도 버젓이 일어난다. 이유가 없다. 있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다. 서울에는 1000원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행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키가 190cm가 넘는 20대 남성이 단지 눈이 마주쳤다고 70대 노인을 폭행한다. 아버지뻘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한 20대 택시승객이 구속됐다. 사기·협박·공갈꾼들도 온통 들끓는다. 지금도 호시탐탐 서민의 호주머니를 노린다. 특히 가해자는 죄의식도 없이 살고 있는데 피해자가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X 같은’ 일도 벌어진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20대 젊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또 서울 노원구 세모녀 살해 사건과 남동생이 친누나를 살해 유기한 사건은 충격을 넘어 공포다. 살해 이유와 수법, 이후 행적이 너무 섬뜩하고, 무섭다.

피해자가 자력으로 항거가 불가능한 어리고, 나이가 들고, 힘이 없는 우리의 어린 자녀와 어버이, 부녀자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버려지고, 두들겨 맞고, 사기 당하고, 목숨까지 잃는다. 국가도, 정권도, 사회도 이들을 지켜주지도, 보호하지도 못한다. 집에 있어도, 바깥에 나와도, 사람을 마주쳐도 무섭고, 두렵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건만 지금 이 나라에서는 기대 조차 할 수 없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에야 정권도, 정치권도, 사회도, 검찰도, 경찰도 야단법석을 떤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국민들이 두려움과 무서움, 공포에 떨어도 이들에게는 오로지 검찰개혁, 언론개혁, 권력잡기만이 중요할 뿐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4주년 연설에서도 국민이 무섭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도 이에 대해 단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개혁 보다도, 차기 정권을 잡는 것 보다도, 부동산 안정 보다도, 맞고, 사기당하고, 목숨을 잃는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국민이 사기·협박·폭행에 시달리고, 귀중한 생명을 잃고 있는 판에 검찰개혁, 언론개혁, 차기정권 잡기에만 부르짖는 이 나라가 한심하기만 하다. 국민은 묻는다. “뭣이 중헌디”라며….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다.

정영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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