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제비꽃
[경일춘추]제비꽃
  • 경남일보
  • 승인 2021.05.1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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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계절은 어김이 없다. 나무에 핀 꽃들이 산색을 바꾸더니 어느새 또 초록향연이다. 순간순간을 마음에 담아 오래도록 보고 싶지만 세상살이가 찰나의 아름다움인지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봄날에 젖어있던 어느 날 한 포기 제비꽃이 눈길을 끌었다.

풀 한 포기 날 것 같지 않은 시멘트 길 모퉁이에 다소곳하게 보랏빛으로 나름의 삶을 활짝 피워내었다. 무엇 하나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곳에서 보랏빛 꽃을 피워 내다니! 씨앗 하나 빛 한줌만 들어가도 살아내는 생명의 힘 앞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피는 꽃이라는 제비꽃! 제비꽃만 보면 생명력을 이해하지 못한 실수가 떠오른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흥부의 박씨라도 물어 와 세상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잠재된 바람이 있었던 건지…. 앙증맞은 보랏빛 꽃잎이 예뻐서 들에 가만히 자리하고 있는 제비꽃을 손바닥만 한 내 부추 밭 옆에 옮겨 심었다. 그런데 그것은 욕심이 부른 생명에 대한 내 무지였다는 것을 그해 여름이 가기도 전에 알았다.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보고 싶었는데 부추 보다 더 잘 자라고 부추보다 번식이 왕성한 제비꽃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너무 잘 자라서 고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쑥쑥 자라는 제비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냥 둘까 싶다가도 봄부터 가을까지 요긴하게 반찬거리가 되는 부추를 없앨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하는 수 없이 일단 부추 밭에 있는 제비꽃만 뽑아내어 부추도 살리고 제비꽃도 보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뽑아내도 며칠을 못가고 다시 부추 밭에 파랗게 올라오는 제비꽃 새싹에 지쳐 제비꽃이 더 이상 꽃이 아닌 짐이 되어버렸다.

“뭣이 중헌디?” 마음을 정하고 나서 제비꽃을 뽑아내는 내 손끝의 힘은 완강했다, 나만 감상하는 꽃보다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내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손바닥만 한 밭에서 잔인하게 제비꽃을 뽑아내던 내 손끝의 힘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다. 그 자리에 두고 그대로 지켜보았다면 짐이 아니고 아름다움으로 남아있을 텐데 내 헛된 욕심이 부른 못난 행동이었다. ‘뜻대로 이루소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너의 다른 이름인 ‘여의화(如意花)’! 영원하고 불변하는 절대 진리인 ‘나’ 와 ‘너’ 가 온전하게 같아져서 ‘하나’ 가 되어야 여의 꽃을 피우는 것인데…. 너와 나를 분별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삶을 반성한다. 그래서 너를 볼 때마다 너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사랑이 아프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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