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임기 말 레임덕은 대통령의 숙명
[경일시론]임기 말 레임덕은 대통령의 숙명
  • 경남일보
  • 승인 2021.05.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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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공수처가 최근 대통령 가족 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수사를 회피했다. 대통령 아들의 코로나 피해 예술지원금 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통령 일가 명예를 해쳤다는 고발 사건이다. 석 달쯤 주물럭거린 끝에 명예훼손은 공수처 수사 범죄가 아니라며 검찰에 떠둥그려버린 거다. 송영길 여당 대표는 지난 14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소형 원자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취임 이후 탈원전 정책을 견고히 보듬고 있는 대통령 면전에서였다.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 장관 청문회 정국에서 임혜숙, 박준영 두 장관 후보자 임명을 사정없이 반대했다. 대통령이 취임 4년 기자회견에서 후보자 모두 임명할 듯한 뜻을 내비친 직후였다. 얼마 전만 해도 상상 못할 발언들이다. 또 있다.

대통령이 회견을 하던 날 여당의 의원총회에서는 귀를 의심할 소리들이 들렸다. 기동민· 윤후덕 의원 같은 이들은 국회 법사위원장에 집착 말자고 했다. 일방적 법안처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여러 ‘개혁 입법’을 야당 협조 없이 처리해온 지난 1년여의 자기당 행태를 지적한 거다. 기·윤 의원은 특히 종부세와 재산세는 비판이 있더라도 토론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기조를 바꾸자는 말이었다. 정일영 의원은 이제 검찰 개혁보다는 백신과 부동산 문제 해결에 더 힘을 써야 한다고도 했다. 그간 격한 여론에도 청와대가 꿈쩍도 안했던 사안들이다.

이러는 사이 검찰 쪽에서도 ‘일’이 있었다. 검찰수사위원회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기소하라고 결정했다. 이 위원회는 이성윤을 감싸온 현 권력 편을 들어 기소하지 말라 하겠지 싶던 터였다. 결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지검장은 기소되었다.
 
최근 한 열흘 동안에 있은 이 일련의 일들을 두고 분석과 판단이 엇갈린다. 보수 언론과 야권에서는 대통령 레임덕의 징후라고 한다. 임기 1년 남은 정권이 마침내 본격 레임덕 소용돌이에 접어들고 있는 신호탄들로 보는 거다. 장관 임명을 전후하여 드러난 대통령의 생각과 여당 일각의 뜻이 어긋났던 건 레임덕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청와대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 이번 장관 인사에서 의견 간극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당에 떼밀려서 한 명을 낙마시킨 게 아니라 대통령 의중도 처음부터 그러했다는 뜻이었다. 구차하게 들렸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로서는 레임덕이란 말 자체를 차단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작금의 여권 내 흐름을 사뭇 레임덕 시초로 여긴다. 현재의 권력에 누수가 시작됐다고 보는 거다. 우선 대통령 자신의 장관 임명 스타일 변화에서 그런 생각의 근거를 찾는다.

말썽 많던 장관 후보 셋 중 최소 한두 명은 안 된다는 당의 목소리대로 실현된 것이 그렇다는 거다. 취임 후 야당과 여론이 부적격자라며 극렬 반대한 인물들을 단 한 번도 후퇴 없이 스물아홉 번이나 밀어붙인 대통령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자진사퇴 형식으로 한 명을 낙마시켰다. 후보 스스로의 뜻이기 전에 대통령의 뜻일 줄 국민들은 짐작한다. 대통령의 이런 자세 변화가 곧 레임덕의 상징 아니냐는 것.

안정된 국정 운영에 해로운 임기 말 레임덕은 번번이 봐온 경험칙이다. 대통령제의 숙명이라고도 한다. 누구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임덕을 애써 부인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구구한 부인보다는 시쳇말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받아들이면서 아집은 많이 줄이는 게 좋겠다. 그러는 것이 레임덕 혼란의 지혜로운 최소화 방안 아닐까. 여당 의원들은 서울·부산 보궐선거 치른 지금 누구보다 국민 눈 높이를 옳게 가늠하고 있을 거다. 문 대통령이 여당 쪽 의견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귀 기울일 때가 된 게 아닌가 한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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