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봄, 봄, 봄이로구나
[경일포럼] 봄, 봄, 봄이로구나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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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
벌써 70번이나 맞이하는 봄이지만 그동안은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에서는 특별할 게 없다. 기껏해야 사파동의 동네 소공원에 자리 잡은 텃새들의 노래 소리를 조금 들었을 뿐이다. 다행히 옆집 담장 너머로 매화꽃을 보는 게 나에게는 봄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창녕 우포에 오고부터 온 세상이 초록으로 바뀐다는 봄을 기다렸다. 오래된 가지에서 돋아나는 새싹의 기운과 새벽마다 피워 오르는 물안개가 분명 온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것 같았다. 드디어 봄이 왔다. 시끄러운 새소리가 아침 잠을 깨웠다.

봄은 우포에 오자마자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색깔을 칠하였다. 일단 색칠하기를 시작하면 아무도 못말린다. 만물이 생동하고 있었다. 정말 무섭게 살아 움직였다.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귀여운 연두빛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제각기 속도 조절을 하면서 짙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파릇파릇한 색깔을 골고루 입혔다. 잠깐 돌아섰다가 다시 보면 벌써 다른 색이다. 이때껏 나는 연두와 초록이 한 가지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포의 봄맞이 색깔 잔치를 보니까 그 종류가 수백 가지도 넘는다. 똑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서로 자기 색깔이 제일이라고 뽐내다가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연두와 초록을 보여준다. 비가 오고 나면 연두에 초록을 덧칠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크레파스 상자 안에는 도저히 가두어 둘 수 없는 생생한 색깔들이다.

보름 쯤 지났을 때였다. 왕버들 어린 새싹이 초록빛으로 바뀌자 나무 밑에 숨어있던 풀들이 제자리를 잡고 올라왔다. 일제히 올라와서 삭막한 흙을 초록 풀밭으로 바꾸었다. 이제 숲은 풀밭에게 점령당하면서 온통 초록 빛깔로 뒤덮혔다. 작년 초록과 이번에 생긴 새 초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다른 색깔은 근처에 올 수도 없을 정도로 초록의 힘은 막강하다. 나무와 풀이 우거지면서 숲은 거대해졌다. 이제 우포는 화려한 초록 세상이 되었다.

새싹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것은 기다림의 힘이 온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새싹이 있는 곳을 몰랐다. 간절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다가 여기저기 앞 다투어 돋아나는 것은 큰 사건이다. 조선시대 윤현은 파란 새싹이 돋는 것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일없는 자연에서 도리어 일 많으니(無事自然歸有事)’라고 감탄했다.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것이다.

판화하는 이철수는 대단한 일이라고 한다. 2001년에 그린 「봄날」에는 가지와 꽃만 있고, 앙상한 가지마다 노란 꽃들이 예쁜 모습으로 달려 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이 ‘대단해! 저것 좀 봐!’라고 말한 게 적혀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던 화장터를 1970년 경기도 고양시 벽제로 옮긴 후에 그 자리에 고은초등학교를 세웠다. 화장터의 흉한 기운을 자라나는 새싹들의 생명력으로 누르기 위해서였다. 그 정도로 새싹의 힘은 놀랍다.

온통 우포를 뒤덮은 진한 초록에서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힘이 느껴진다. 사방에서 돋아나는 새싹들의 기운은 온 세상을 절망의 늪에서 건져 내기에 충분한 에너지이다. 우포를 초록 세상으로 바꾼 새싹이 우리 사회의 암울한 코로나와 부동산 기운을 누르고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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