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콩 농사
[경일춘추]콩 농사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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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메주 콩 심을 때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이웃의 논을 빌려 콩 농사를 지었다. 우리조상들은 밭에 콩을 심을 때 한 번에 세알씩 심었다. 땅 속의 벌레와 새 그리고 사람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벌레와 새와 사람이 모두 자연의 주인이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할 동반자로 보았던 조상들의 공동체 의식은 오늘날의 공동체를 사람들만의 공동체로 여기는 우리의 생각을 부끄럽게 만든다. 농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콩을 심고 콩이 한 뼘 쯤 자랐을 때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하루만 더 내리면 콩 농사를 망칠 순간에 비가 딱 그쳐 주었다. 비가 그치고 이랑의 물이 빠지니 누렇게 뜬 콩잎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나는 것을 보니까 생명력이란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콩 농사를 지으면서, 콩잎 틔우기가 무섭게 줄기를 싹둑 자르는 거세미, 콩이 잘 여물지 못하게 하는 노린재, 콩잎을 너무 좋아하는 고라니의 피해를 막는 것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작업은 콩보다 왕성하게 자라는 풀이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남편보다 풀이 더 부지런했다. 하루만 지나면 마법처럼 밭이랑이나 고랑에 연초록색을 뿜어내었다. 땅이 살아있음을 벅차게 실감했지만 쪼그려 앉아 콩밭의 김매는 일이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다. 더구나 남편은 일 중에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을 가장 힘들어 했으니 어찌하랴. 빌릴 수 있는 손은 다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마침 아랫마을에 농촌봉사활동을 온 그 젊은이들이 아니었으면 왕성하게 자라는 풀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된 농사를 마다하지 않고 함께 땀을 흘리며 힘껏 동참해 준 어설프지만 활기와 열정 가득한 젊은이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아직도 고마운 청년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여러 손길로 콩잎은 푸르게 잘 자라 주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과 달리 밭이 아닌 논에 심은 우리 콩은 가뭄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콩 농사 초년생이었던 우리는 그 해 우리 마을에서 콩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콩 부자가 된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콩 하나가 싹터서 열매 맺기까지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의 땀과 정성, 여러 이웃들의 도움 그리고 햇볕과 달빛과 별빛, 바람의 도움으로 알차고 튼실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는다. 좋은 콩은 장맛의 기본이다. 장맛은 이렇게 콩이 성숙해지는 기다림의 미학으로 행복한 밥상과 건강에 공헌하는 것이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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