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백신들 좀 맞으시지요!
[경일시론]백신들 좀 맞으시지요!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4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유석(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지만, 영어 회화는 영 젬병이다. 노력해도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듯이, 회화만큼은 정말 쉽지 않다. 하다못해 중학생 아들한테도 잔소리를 듣는다. 아빠의 F와 P발음은 구분이 안 된다고. 사춘기 아들놈이 소심하게 아버지한테 딴죽 걸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애써 자위하지만, 옆에서 고개 끄덕이는 아(마도)내(편)으로 짐작되는 여성을 보면 부아가 더 치민다. 하지만 어쩌랴. 영어 책은 더듬거리며 읽어내도, 말은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인데.

그런데 영어회화 책들을 가만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비닐 혹은 비닐봉지라고 불리는 것들을 영어권에서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통칭한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친구들에게 일단 ‘비닐’이라고 이야기해봤자 못 알아듣는다. 일단 ‘비닐(Vinyl)’의 정확한 영어 발음은 ‘바이널’에 가깝기 때문이고, 영어사전에서 ‘Vinyl’은 오히려 레코드판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플라스틱 종류의 전문가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불리는 재활용품 분리수거 의식 덕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갖가지 플라스틱 종류의 이름을 조금씩은 알고 있다. ‘비닐’, ‘페트(병)’, ‘ABS’, ‘FRP’ 등은 물론이거니와, 섬유 종류로 넘어가면 아는 수준은 더 높아진다. ‘나일론’부터 시작해서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아웃도어로 유명한 ‘고어텍스’까지. 그런데 이런 용어들은 사실 다 전문 용어다. 소비자들이 굳이 이 화학 전문용어까지 머릿속에 기억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물론 이 중에서는 상표명도 있지만, 대부분 석유화학제품들이니 소비자가 전문 용어까지 기억해서 물건을 구매할 필요는 없다 싶다.

어디 이뿐인가. 근 10여 년 전, 줄기세포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은 온통 전문 용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덕에 온 국민이 줄기세포 전문가처럼 온갖 전문용어를 꿰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입에 달고 살았던 줄기세포 관련 전문용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요즘 이렇게 어려운 전문용어의 난무 상황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찾을 수 있다. 화이자가 어떻고, 모더나는 뭐고, 국산 백신도 있다 하고, 러시아 백신은 스푸트니크이며, 통칭 AZ라 불리는 백신, 즉 아스트라제네카는 맞으면 안 된다느니 뭐니 혼란스럽다. 사실 시시각각 정부 발표도 달라지고, 언론의 기사는 더 혼란스럽기 때문에 판단의 근거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알 수 없긴 하다. 백신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들과,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으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보다, 언제나 소수의 부작용만 기사화되는 현실은 백신에 대한 우리의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 물론 언론은 아무리 작은 부작용이라도 보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말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덕에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7명대로 급속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도하진 않는다.

사실 필자의 전공은 백신의 안정성을 논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보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전문지식에 집중하다가 정작 알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닐’을 ‘플라스틱’으로 불러도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줄기세포 소란 때 회자되었던 전문용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지 오래다. 백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부작용의 공포에 떠는 것보다는 일단 더 큰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단면역에 참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중요한 사실은 어르신들이 먼저 맞아 형성되는 면역의 작은 지붕이 자식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70세 이상 어르신들은 이제 맞으실 때가 온 것으로 안다. 모두들 백신 맞으셨으면 좋겠다. 어르신들부터 안전해지셔야 코로나 상황의 빠른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르신들의 면역 형성이 사랑하는 자식들의 안전을 지켜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다. 사족이지만, 필자 주변의 일부 돈 많고 많이 배운 이들은 백신의 안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노쇼 백신에 대기를 걸어 곧바로 맞았다. 그중 일부는 올 여름 해외여행 갈 꿈에 부풀어 있다. 물론 필자는 노쇼 백신을 맞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그리고 노동 조건이나 생활환경에 따라 신속한 면역을 정말 필요로 하는 이들이 한 명이라도 먼저 맞는 게 당연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서유석(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