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8]벨베데레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8]벨베데레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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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예술의 도시 빈(Wien).

어쩌면 영어식 명칭인 비엔나가 우리에게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멋스러운 궁전,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즐비한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거리가 가득할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 된 바 있다.

비엔나에 왔으니 비엔나커피 한잔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비엔나는 곳곳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는 예술의 도시이자 카페(Cafe)의 도시이기도 하다. 비엔나 시내 중심가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있는 카페들이 많은데, 이 카페만을 찾아다니는 투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1685년 커피 하우스로 처음 문을 연 카페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며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비엔나 시내의 카페가 1200여개에 달했다고 하니 한집 건너 한집에서 찾을 수 있는 오늘날의 카페 문화가 비엔나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시작 되었던 것이다.

과거 비엔나의 커피 하우스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 일 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철학,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인들이 조우하며 의견을 나누는 장소로 활용 되었고, 곧 비엔나를 넘어 유럽의 예술과 학문이 발전하는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카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백발 할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메뉴판에서는 ‘비엔나커피’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위에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그 비엔나커피를 마시려면 ‘아인슈페너’를 주문해야 했다. 마차가 다니던 시절, 마부들은 흔들리는 마차에서 채찍질을 하며 커피를 마셔야 했는데 커피위에 올라간 크림이 쏟아짐을 방지해주고 빨리 차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커피가 바로 아인슈페너다. 이것이 도시의 영어식 명칭과 합쳐져 비엔나커피라고 널리 알려진 것이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음악당, 국립 극장,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 대학, 시청사 등이 커피의 향과 함께 비엔나에서의 하루를 가득 채워주었다.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1908년작벨베데레 미술관
◇클림트의 키스

그동안 수많은 유명 미술작품들을 만났었지만, 솔직히 말해 모든 작품 앞에서 감동과 기쁨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섰을 때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볼품없는 작품 크기에 실망했고, 피카소의 작품 앞에서는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까치발을 한 채 작품을 보아야 했을 때는 차라리 컴퓨터로 확대해서 보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며 툴툴 거린 적도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앞에 두고는 얘기가 달라진다.

전시관 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키스’를 처음 본 순간, 하마터면 입 밖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올 뻔 했다. 마치 그림 뒤에서 누군가가 조명을 비춰주고 있는 것처럼 이 그림만이 유독 빛나고 있었다.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이 그림은 종이로 된 책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게다가 그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비감과 반짝이는 금빛이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대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키스’는 작품의 제목처럼 두 남녀가 서로를 감싸 안고 키스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얼굴은 그림의 가장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심부에 있던 우리의 시선을 위쪽으로 옮긴다. 남자의 얼굴은 뒷모습에 가려져 궁금증을 자아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여성의 얼굴은 그들의 온화한 사랑을 짐작케 한다. 두 사람의 옷에서는 클림트의 화려한 색채와 패턴을 엿볼 수 있다. 두 남녀는 서로의 황금빛 옷에 둘러 싸여 둘만의 시간에 멈춰 있는 듯하다. 또한 그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꽃밭에서는 둘의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는 꽃들의 환희가 들려오고, 여성의 드레스 밑으로 뻗어 나온 금빛 줄기는 이들의 사랑을 축복하고 있는 것 같다. ‘키스’는 오늘날 ‘황금의 화가’라 불리는 클림트의 가장 대표작으로 여겨지며 그는 실제로 이 그림에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다.



◇황금의 화가 클림트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클림트에게 황금은 자신의 예술적 혼을 표현하는데 가장 가깝고 적합한 소재가 되어주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그리 부유 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낸 클림트는 친척의 도움으로 비엔나 응용 미술 학교에 입학했다. 응용미술은 공예, 장식등 실생활에 활용되는 미술의 한 분야로 순수미술과 대비된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클림트는 화가이자 친동생이었던 에른스트와 함께 실내 장식 벽화를 그렸는데, 이것은 클림트의 이름을 비엔나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그러나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인간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클림트의 예술적 가치관은 전통을 고수하던 비엔나 미술 협회와 부딪히게 된다. 결국 클림트는 1897년 비엔나 화단의 전통을 거부하고 예술가들의 자유를 표방하는 ‘빈 분리파(Secession)’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이 된다. 빈 분리파는 회화 장르 뿐 만 아니라 조각, 건축 등 예술계 전반에서 일어난 움직임으로 이것은 비엔나에서 새로운 예술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몇 년 후, 클림트는 빈 분리파 안에서의 내분과 갈등을 겪으며 탈퇴했고 이때부터 진정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나간다. 현재 벨베데레 미술관에 소장 되어있는 ‘키스’가 그려진 시기는 클림트가 빈 분리파를 탈퇴 하고 난 이후다. 클림트는 56년의 인생 동안 총 240여점의 회화작품을 남겼다. 워낙 오랜 시간을 들여 작품을 완성하는데다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던 나머지 비교적 적은 수의 회화작품이 남아 있다. 또한 벽화작업 같은 커다란 프로젝트도 개인 작품의 수에 영향을 끼쳤다.



◇베일에 싸인 화가, 클림트

클림트의 그림은 한 때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팔렸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림에 비해 화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클림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키스’의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에밀리 플뢰게와 죽기 전까지 가장 가까운 사이로 남았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좀처럼 꺼렸고 작품에 관한 설명조차 잘 하지 않아서 오늘날 우리는 온갖 추측과 의문을 품은 채 클림트의 그림을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세계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그러나 우리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은 클림트 덕분에 그의 그림을 보면서 수 만 가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키스’의 아우라에 흠뻑 빠져 눈이 시려 올 때 쯤. 클림트가 두 남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숭고한 감정이 변하지 않는 황금 속에 녹아들어 영원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그림을 만나러 벨베데레 궁전에 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면, ‘키스’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비엔나 밖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주소: Prinz Eugen-Straße 27 1030 Vienna

운영시간: 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성인 16유로, 19세이하 무료

홈페이지:https://www.belvedere.at/



 
제체시온 건물
벨베데레 궁전
비엔나의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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