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8)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8)
  • 경남일보
  • 승인 2021.06.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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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20)
유시연 작가는 바실리카성당을 방문하고 부활절 밤미사와 낮미사에 동참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 입구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군용차를 세워 놓고 일일이 검색을 한다. 로마시내 곳곳에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아씨시도 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검문 검색한다. 테러 위협으로 이태리도 불안정하다. 특히 대중이 모이는 장소는 경계가 삼엄하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심란한데 지구촌 어디나 안심할 곳이 없나보다. 터키에서는 얼마전 IS 테러로 미사중아던 콥트 교회 신자 50여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부활 대축일 미사는 꼰벤뚜알 수도회 총장이 중심이 되어 집전하고 한국인 신부 두어분이 보였다. 두어분이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은 아시아계는 맞는데 일본인 신부인지 중국인 신부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미카엘 신부도 제의를 갖춰 입고 미사 집전에 동참했다. 아프리카와 그 외 여러나라 신부들이 있었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높은 천장 돔을 휘돌아 울려퍼진다. 성가대를 지휘하는 수사신부의 희끗희끗한 뒷머리가 보이는 가운데 그의 열정 가득한 지휘가 눈에 띈다. 불안정한 국내 정세에 개인의 안위를 위한 기원은 이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며 기업가의 아들이지만 부유한 삶을 버리고 평생 가난을 실천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페루자로 갔다가 작가는 다시 피렌체에 닿는다. 작가에게는 이곳은 구면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예술가를 길러낸 피렌체는 관광객들로 혼잡하다. 말을 탄 토스카나 주 대공 코시모 1세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는 광장은 세계 각국 단체 손님으로 뒤덮여서 오래 전 설렘의 기억을 안고 있는 나에게는 좋은 추억마저 퇴색될 위기다. 이 지역에서 나는 녹색 대리석으로 지은 두오모성당의 웅장함은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유장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메디치가 이야기를 ‘로마인 이야기’에서 다룬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남편과 이곳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왕성한 집필을 했다. 한때 한국인 독자들이 꽤 되었는데 그녀도 이제는 조용히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앞에서 서성이다가 서둘러 인파를 피해 광장 외곽을 걷는다. 우연히 들어간 성당은 저녁미사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신자가 십여명, 귀에 익은 알렐루야 멜로디를 따라부르고 성체를 모시고 미사후 한인식당으로 갔다. 여행 가이드 일을 은퇴하고 한인식당 궁을 차린 남자가 방금 미사에 참여한 성당에 보티첼리가 묻혔다고 말한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고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도 손을 댄 그 보티첼리의 흔적을 만나다니…. 한인식당 주인 남자에게서 여행정보를 듣고 계획하지 않았던 지미그냐를 머릿속에 입력한다. 여드레만에 맛본 한국음식이다. 제육, 된장찌개, 잡채를 시켜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 골목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다.”

작가의 순례기는 이어 <르네상스 화가>, <토스카나>, <시에나>, <미켈란젤로 언덕>, <로사리오 성당>, <소렌토>, <카푸친수도회>, <산 몬테 신탄젤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떼라노 대성전>, <베니스> 등으로 이어진다.

작가 유시연은 이태리의 순례길를 펼쳐주며 그 길 위에서 함께 하는 역사와 문화, 신앙이 하나임을 몸으로 그려보여 주었다. 어떤 순례가 이처럼 하나로 끌고 가는 여정이 될 것인가, 독자들에게 하나의 과제를 던져 주었다. 그는 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이 기록을 남기며 후기를 썼다. “이제 이 전염병(코로나19)은 어느 한 국가가 아닌 세계 모든 이들이 함께 맞닥뜨려야 하는 과제가 되어버렸다. 삶의 긴 여로에서 잠시 머물렀던 이국의 어느 도시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려는 내 가슴을 쿵 하고 무거운 바윗덩이가 때리듯이 지나간다.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행을 이야기하고 낭만을 끄집어내어 복기하기에는 너무 엄혹한 시간이다. 삶과 죽음 앞에 감히 인권을 말하기에는 생명이라는 살아야 한다는 절대 과제 앞에 모든 것들은 무위에 지나지 않으리라. 인류는 지금 또 하나의 시련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위기를 지나 오늘에 이른 우리 인간 정신은 삶의 엄중함을 인식하며 더 높은 세계, 영혼의 지평을 넓혀 줄 세상 너머로 시선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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