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구겐하임 가문과 구겐하임 뮤지엄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구겐하임 가문과 구겐하임 뮤지엄
  • 경남일보
  • 승인 2021.06.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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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o_Guggenheim,_Bilbao_(31273245344)


구겐하임(Guggenheim)가문은 미국 비즈니스계에서는 명문가로 조명되기도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적 사례로 대표된다. 마이어 후손들은 동구유럽 출신의 유태계 스위스 시민권자로 184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초기에는 수입업자 일을 하였고, 이후 광산 개발경영과 제련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광산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부인 바바라와의 사이에 10명의 자녀들을 두었었다. 자녀들은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일궈낸 막대한 재산으로 현대 예술 분야와 항공분야에 대한 메세나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구겐하임이라는 가문 명칭은 스위스 렝나우(Lengnau) 지역 주민들에게 나폴레옹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대니얼은 마이어의 사후에 구겐하임 가문의 가주가 되어 광산 사업을 확대하고 전 세계적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하는 등, 형제 중 가장 공적이 컸다. 삼남인 머리(Murry)는 처음에는 섬유와 자수를 수입하다가 1881년에 광산 경영과 제련 사업을 승계 받았다. 넷째인 솔로몬은 재단을 설립하여 현대 미술관 설립에 기여하고 현대 미술의 진흥발전을 지원하는 메세나 활동에 헌신하였다. 다섯째인 존 사이먼은 1기에 콜로라도 주지사를 역임하였고, 1925년에 부인과 함께 3년 전에 요절한 아들을 추모하며 ‘John Simon Guggenheim Memorial Foundation’을 설립하였다. 이 재단에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과 예술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낳은 사람들에게 포상을 해오고 있다.

자선가였던 솔로몬 구겐하임은 1920년대부터 근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당시의 근대 미술 작품을 다양하게 수집한다. 그러면서 그가 모은 소장품들을 자신의 아파트에 소장해오다가 나중에는 소규모 전시회를 기획하여 여러 도시에 임대 전시까지 하게 된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새로운 소장품들이 늘어나면서 박물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1937년에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한 후, 뉴욕 시와 계약을 맺고 미술관을 개장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최고의 현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게 건물의 디자인을 의뢰함으로서 구겐하임 미술관의 기초가 세워지지만, 부지선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1943년에 설계된 건물은 1957년에 들어서야 착공되었고 1959년에 완성되었다.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에서는 뉴욕 맨해튼에 자리 잡고 있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뉴욕과 빌바오의 두 뮤지엄은 건축양식의 독특함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과 관광객들의 버킷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달팽이를 닮은 맨해튼 뮤지엄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것으로, 완공 당시에는 주변 건물들과 대비되어 혁신성과 독창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름이 넓어지는 특징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많은 충격을 줄 정도였다. 이 뮤지엄의 백미 라면 계단이 없는 나선형 구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나선형 구조로 관람객들은 걸어 나가면서 작품을 구경할 수 있고, 미술관의 어느 부분에 있어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편 1997년에 네르비온 강변에 세워진 빌바오 뮤지엄은 캐나다 출신의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O. Gehry)가 설계하여 미술관 건물을 커다란 조각 작품으로 빚어내듯 건물표면을 유려한 곡선으로 처리하면서 표면 자재는 항공기에 쓰이는 티타늄으로 감싸고 있는 독특한 형상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기둥이 없는 철골 구조인데다가 보는 각도에 따라 360도 모두 다른 형태로 드러나서 해체주의 건축양식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빌바오는 한때 철강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었지만 쇠락한데다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빈번해지고 있는 가운데 1983년에는 사상 최악의 홍수사태까지 겪게 되어 피폐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빌바오 뮤지엄이 들어서면서 쇠락하던 도시에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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