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부고] 박재홍 편집국장을 보내며
[늦게 온 부고] 박재홍 편집국장을 보내며
  • 김지원
  • 승인 2021.06.10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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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桎梏)의 시간, 감당한 언론인
박재홍 편집국장

 지난 8일 본사 편집국에 부고가 날아들었다. 박재홍 옛 편집국장의 부고 였다. 박 국장은 경남일보가 신군부의 탄압에 펜을 꺾어야 했던 1980년 11월, 폐간호를 이끌었던 편집국장이다. 

1980년 5월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언론 장악을 위해 전국 언론사에 압박을 가했다. 이에 전국기자협회는 일제히 항거 신문·방송 발행 중단을 결의했다. 본보도 이같은 단체행동을 두고 논의 끝에 당시 편집국장이던 손강호 국장의 결단으로 “정치신문 아닌 언론 본연의 자세로 발행을 강행” 하기로 했으나 신군부에서는 예외없이 본사에도 기자협회 간부급 기자를 내놓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손강호 이사는 후임으로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이던 박재홍 국장을 추천했다. 이 때가 1980년 8월. 

도내에서 규모로나 역사로나 가장 앞줄에 서 있던 경남일보는 그해 11월, ‘1도 1사’라는 명분 아래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박 국장은 당시 마지막 편집국장으로 기록됐다. 박 국장은 이후 강제폐합이 이뤄진 마산의 경남신문에서 진주지사장을 맡았다. 통합신문사 사장의 요청이었다.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강제폐간 됐던 언론사들의 복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경남일보 역시 전직 언론인과 지역사회의 여망 속에 복간 움직임이 일었고, 폐간 당시 사장 김윤양, 논설실장 손강호 등을 중심으로 복간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추진위에 박 국장이 이름을 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0년 8월 6일 편집국장을 명 받았으나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펜을 꺾어야 했던 그는 1989년 11월 복간호에 다시 편집국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를테면 그는 질곡(桎梏)의 아픈 시간을 몸소 감당한 언론인이다.

박 국장은 1960년 1월 경남일보에 입사해 격변의 시기, 사회부 기자를 거쳐 취재부장,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등으로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중앙일간지들이 지역특파원을 두었던 시절 조선일보로 잠시 옮겼던 그는 곧바로 중앙일보 지역특파원으로 스카웃 돼 울산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다시 경남일보의 부름에 사회부장으로 고향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내내 취재 일선을 떠나지 않았던 그 였다. 

편집국장을 처음 명 받았던 당시, ‘신문과 방송’에 소개 된 그의 인물 기사에는 “타협할 줄 모르는 인상을 풍기나 남의 어려움이나 억울함에는 항상 한발 앞서 있는 따뜻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진주 토박이나 흔히 갖기 쉬운 향토색을 엿보긴 어려웠고, 좌중을 사로잡는 호기와 춤 솜씨는 프로급에 술값은 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몫이어야 했다는 장일영 당시 특집부 차장의 글에서 반듯한 언론인으로 또 친근한 선후배, 동료로서 면모가 엿보인다.

복간 후 1990년 6월까지 편집국장을 맡았다. 성낙률 국장에게 편집국장을 넘긴 박 국장은 논설실장, 제작 이사 등을 거쳐 2003년 10월, 길고 파란만장했던 언론인의 짐을 내려놓고 퇴직했다. 

그 후로 18년. 발인을 하루 앞둔 늦은 부고가 그의 옛 직장으로 전해졌다. 세월이 지난 편집국에는 그와 함께 근무했던 얼굴들은 손에 꼽을 정도. 진주성 앞 옛 사옥과 복간을 준비하던 시내 사무실을 거쳐 상평동에 번듯하게 새로 지었던 신 사옥도 벌써 30년 세월이 지났다. 지난 9일 이른 아침, 세월만큼 낯선 후배들이 지키는 옛 일터를 그의 영정이 30년전 출근길 처럼 다녀갔다. 

“일하는 기자, 책임지는 기자, 예절을 지킬 줄 아는 기자로서 살아 꿈틀거리는 기사를 써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고 일렀던 그의 마지막 걸음. 

늦게 당도한 부고에 112년 경남일보의 어른 한분을 떠나 보낸 초여름 맑은 아침의 짧고도 영원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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