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다시, 학교에 사는 즐거움
[교단에서] 다시, 학교에 사는 즐거움
  • 경남일보
  • 승인 2021.06.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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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지난 달 어느 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P입니다. 귀국해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8월부터 국립대만대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공무원 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회사 정규직만 되어도 크게 축하 하는 세상에 교수라니, 그것도 명문 대만대학에. 서울대와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런 수재가 교수가 된 것은 별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평소 그의 반듯한 품성과 논리적인 생각, 독서광이었던 그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P교수와 같은 반엔 현재 sbs의 L PD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이란 봉사활동엔 다 참여했던 L군, 망한 주방회사를 도운다고 더운 여름 길거리에서 냄비까지 팔았던 그는 비록 재수를 했지만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세계 60여 개국을 배낭으로 여행했고, 그것을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뛰어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은 굳이 맹자의 말이 아니라도 참 즐겁다.

그런데 이런 영재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는데, 그것은 성장의 과정을 함께하는 즐거움이다. P교수와 L PD의 같은 반에 B군이 있었다. 하동군 옥종의 깊은 산골 출신으로 편모슬하였다. 입학 성적이 400명 중 310등 이었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200등과 100등, 60등과 40등, 졸업할 때는 인문계 14등으로 교육대학에 진학하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의 학습방법은 자세히 모르나 B군의 책엔 내가 수업시간에 한 농담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을 세 번이나 했음에도 고등학교 때 마라톤을 완주하고, 의대를 졸업한 뒤 해운대구 보건소에 근무하는 신승건씨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란 TV프로에서 ‘현재의 상황으로 미래를 재단하지 마라’고 했다. 또 조선 중기의 정치가인 내암 정인홍은 ‘영송(詠松)’이란 시에서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탑 서편에 있는데, 탑은 높고 솔은 낮아 키가 같지 않구나. 오늘 이 소나무 탑보다 작다고 말하지 말라, 솔이 훗날 자라면 탑이 오히려 낮으리니.(一尺孤松在塔西 塔高松短不相齊 莫言此日松低塔 松長他時塔反低)’라 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그 성장과정이나 가능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은 가없다.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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