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물의 도시 진주
[경일춘추]물의 도시 진주
  • 경남일보
  • 승인 2021.06.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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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진주문인협회이사)
 



위대한 도시에는 물이 있다. 베네치아, 로마, 파리, 부다페스트, 비엔나, 소주, 항주…. 진주도 그렇다. 흐르는 물을 따라 문화와 예술이 탄생했고 로맨틱한 인간 정서 유려하게 펼쳐졌다.

일본 북알프스 최고봉인 야리가다케(3180m)를 갔을 때, 산길을 끼고 흐르는 기나긴 물길을 보았다. 만년설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한여름인데도 투명하고 손이 시렸다. 존재의 심원으로부터 흘러나와 끝없이 이어가는 것 같은 비경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후쿠시마, 고베, 홋카이도에도 소하천들 잘 정비해서 관광객들 발길 끌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든 물길 하나가 좋은 인상 남기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진주에도 이런 하천들 많다. 남강, 덕천강, 나불천, 가화천이 있고 명석, 대평, 문산, 금곡, 사봉에서 남강으로 유입되는 도랑들이 있다. 내동에서 발원하여 사천시 축동을 거쳐 사천만으로 유입되는 가화천은 총 12.52㎞ 긴 유로인데 비가 오면 은하폭포 방불할 정도로 물기운이 세차다. 짙푸른 산빛과 건강한 대숲을 적시는 강 풍경을 수려하게 정비하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다.

내 집 주변만 해도 독산리의 모산천, 신율리의 큰밤실천, 작은밤실천, 뉘실천, 대동천이 있고, 삼계리에 삼계천과 구싯골천, 유수리에 앵골천, 시음골천, 유동천, 가호천, 목화골천도 있다. 소박한 영혼 같은 이런 실개천들 부지기수 사라졌다. 1970년대 도시개발에 편승한 나머지 복개천으로 죄 덮어 도로로 만들었다. 자연 대신 자본을, 정신 대신 물질을 선택한 결과 사람들 마음 메말라지고 바람길과 물길조차 까마득히 잊었다. 옛 사람, 옛 기개, 옛 풍류를 잊었으니 물의 도시, 교육 도시라는 명분도 퇴색했다.

이제라도 생명을 머금지 않은 단단한 콘크리트 걷어 내고 한동안 외면당한 하천들 되살리면 어떨까. 멋대가리 없는 지름길과 값싼 지질함과 싸구려 개발에 치중한 나머지 땅속에 묻어버린 여린 개천들 동서남북 이어주고 흐르게 해서 아치스러운 물의 지형 되살리면 좋겠다. 물을 통해 움직이고 물을 통해 선해지고 물을 통해 맑아지면 구름 같은 도포 입고 의관 정제한, 호방한 진주 풍모 도로 찾을 것만 같다.

앞마당, 뒤뜨락을 구김살 없이 흐르던 크고 작은 실개천들 복원되어 여기저기 곳곳에서 남강으로 유입되는 그런 날이 오면 세상에는 위대한 물의 도시가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이정옥 (진주문인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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