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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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6.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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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동화작가 한수연의 수필집과 작가로서의 중량(2)

 


한수연의 수필집 ‘삶에 무늬를 더하다’ 두 번째 이야기이다. 수필이나 일반적인 글에서 사람들은 자기 약점을 노출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한수연의 경우 때로는 그 솔직함에서 수필의 깊이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금 밖에 서다>에서 스스로 음치임을 드러내는가 하면 <기도로 빚을 갚는다>에서는 아버지처럼 스스로도 누군가로부터 얻은 것이 있을 때는 물물교환하듯이 받은 바를 그만큼 그 크기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소극적인 대인관계에 젖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금 밖에 서다>는 재학시절 음치로 밀려났던, 금 밖에서 청소나 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예회 합창단을 뽑는 날이었다. 콩나물 교실 시절이라 반 전체를 무대 위에 올릴 수는 없었다. 평소보다 날카로운 선생님의 눈길이 1분단에 머물렀다. 몇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휘봉 끝에 딸려 교단으로 올라갔다. 2분단에서 3분단, 4분단으로, 지휘봉이 4분단의 나를 비켜가자 가슴에서 쿵하는 진동이 일어났다.

지휘봉이 다시 1분단, 2분단, 3분단, 4분단으로 다가왔다. 지휘봉은 내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교단 위에 올라간 아이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지휘봉은 내 머리 위에서 맴돌다가 마지 못해 내 이름을 불렀다. 허겁지겁 교단으로 올라가려는데 지휘봉이 나를 세웠다.

‘한 번 불러 볼래?’

지휘봉이 여러 차례 나를 비켜 가서 상처를 받아 있는데 나만 오디션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벌겋게 상기되어 이미 반주가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지휘봉이 자리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합창단에 들지 못한 열서너 명은 청소를 하거나 운동장 구석에서 공기놀이나 사방치기를 하며 합창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떤 놀이도 시들해서 자기편을 위해 열성을 다하지 않으니 그 아이들까지 나를 밀어냈다.


이날 이후 화자(작가)는 금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실상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날 내가 보니 내가 금 밖에 서 있었다. 금 밖에서 금 안의 아이들을 바라보니 내가 금 안에서 같이 놀 때보다 아이들의 모습이 훨씬 잘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반칙을 하고도 시침을 딱 떼는 아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괜히 입을 실룩거리는 아이. 편으로 가를 때마다 상대편이 우세하다고 시비를 거는 아이…. 금 밖에서 금 안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점점 재미를 붙였다. 나는 금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화자의 그 다음 음치 이야기는 교육대학 시절로 이어진다. 아시다시피 교육대학은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이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긴장되는 대목이 연출 될 것으로 짐작이 될 터이다.

어느날 시창을 테스트한다는 공고가 게시판에 붙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학교 뒷산 바위 밑에 앉아 혼자 연습을 했다. 목을 쉬게 하여 그 속에 음치를 숨기려는 기발한 음모가 숨어 있었다. 시창 테스트의 마지막날을 기다려 마지막 학생으로 교수실에 들어갔다.

‘교수님, 연습을 많이 헤서 목이….’

교수는 자기 과목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웃으면서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시창이 끝나고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학생은 ‘라’음이 음치군요.’

교수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의 병을 찾아내듯이 내가 숨긴 음치를 찾아내었다. ‘학생은 도레미파솔라시도 모두 음치군요.’ 그럴 줄 알았는데 7음역 중 한 음만 고장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명의(名醫)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평가를 받은 뒤 교수님은 “사람을 울리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쉼표다”라는 명언으로 화자를 깨우쳐 주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 작가처럼 그렇게 솔직히 자기의 약점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독자를 감동으로 이끌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음악시간 이야기에 있어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내리닫이로 합창반에 뽑혀서 <즐거운 나의 집>이나 멘델스존의 <오호 종달새>를 불렀던 추억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한작가의 음치 고백과 같은 진실의 심장부에 닿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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