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별 헤는 딸
[경일춘추]별 헤는 딸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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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 살림지기)
 

 

공부하는 딸이 모처럼 집에 왔다. 대학에 들어가면 좀 편안하고 여유 있게 공부하려나, 멋진 사내아이와 풋풋한 사랑이야기로 함께 설레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대학 내내 바쁘더니 휴학계를 내면서까지 공부를 한다.

간혹 전화하면 지쳐있는 딸의 목소리가 안쓰러웠다. 시골생활을 하다 보니 딸에게 늘 미안했던 점이 학교가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통학거리가 멀어 힘들어 하더니 요즘은 집에 오면 시골 공기가 확실히 다르다며 연달아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는다. 딸에게 위로를 주는 지금 바람이 고맙다. 하늘의 별이 마치 모두 제 것인 양 집을 비운 사이 누가 별을 따 가기라도 한 것 마냥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고 별을 헤어 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남편은 회의 참석차 출타하고 오랜만에 딸과 둘이서 오붓하게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장독대 옆 처마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평소에는 귀찮기도 하고 여유가 없기도 했는데 딸에게 해줄 것이라고는 시골의 확 트인 공간을 제공해 주는 일이다. 집안이 아닌 밖에서 늘 먹던 대로 된장찌개 폴폴 끓여내고 상추쌈 한 주먹 뜯고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들고 나왔다. 오랜만에 집 찾아 온 딸에게 어미가 주는 반찬으로는 빈약했으나 딸의 얼굴에 만족함이 피어나 그 어떤 꽃하고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쁘다. 딸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내 마음을 환하게 한다. 딸의 젊음이 눈부시다. 점심을 달게 먹고 딸과 함께 여유를 부리며 하늘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누웠다.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며 정서의 풍요를 챙기는 딸을 보며 부족하고 미약하더라도 부모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가 생각하게 되었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 처마 밑에서 보이는 청명한 하늘, 새소리 등 모처럼 일상을 부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이는 딸을 보며 시골살기에 위로를 느낀다. 진정성을 교감하고 공감할 또래 한 명 없는 곳에서 이렇게 터전을 잡고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마을 어르신들의 온정과 생활 속 지혜를 배우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람과 햇살과 나무와 된장 간장의 발효를 지키고 교감하며 이 자연을 읽는 재미로 살아온 것 같다. 딸의 심호흡에서 자연의 수혜자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맑은 공기의 상큼함과 전통의 기본을 이어가는 생활의 경계에서 주변의 그 믿음과 따뜻함에 온기를 느끼며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한다. 나보다 훌쩍 커서 어느새 엄마와 아빠의 힘이 되어 주는 지금 내 딸로 함께 해 준 것에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박종숙 (콩 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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