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유리창으로
어린 아들이 왔다
잊고 산 적 없어 늙지도 않는
꽃으로 잦아드는 유월의 몽유
-장용자 시인의 ‘무궁화 피었다’
그날도 비가 왔고 산 쪽으로 난 뒷방 문을 열어두고 어머니는 바느질하고 있었다. 뒷산에서 열예닐곱 살 먹은 사내아이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소년의 노래는 마을에 닿지 않고 산 속에 있었다. 그 뒤로 비 오는 날이면 뒷산에서 소년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어머니는 총 맞아 죽은 한 소년의 죽음을 떠올렸다. 어렸으므로 비교적 자유로운 소년은 빨치산 보급대원을 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을 오갈 때마다 소년은 노래를 불렀단다. 어머니도 소년의 살아생전 노래를 몇 차례 들었다고 했다.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지만 60, 70년대 변산 시골집에서 필자의 어머니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소년의 어머니도 일생 ‘꽃으로 잦아드는 유월의 몽유’를 앓다 갔을 것이다. 죽어서도 빗소리로 노래하는 어린 소년의 한은 남고 낡은 이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무엇도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고 모자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쟁을 치러낸 이 땅의 어머니들 앞에 무궁화가 피는 사연이다.(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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