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이주세씨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6·25 참전용사 이주세씨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 백지영
  • 승인 2021.06.24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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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헌신 걸맞은 대우 아쉬워…지원 못받을 아들 걱정에 '한숨'

 

“전쟁 얘기랑 나 같은 참전용사들이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얘기 둘 중 뭘 들려줄까”

6·25 전쟁 71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진주시 명석면 자택에서 만난 6·25 참전 유공자 이주세(89)씨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 달라는 요청에 그는 손글씨가 빼곡히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인터뷰 약속 시각을 기다리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가슴 속 응어리가 담긴 종이다.

이씨는 6·25 당시 육군과 공군 양쪽에 자원 입대했던 참전용사다. 16세부터 2년간은 육군 소속으로 산청에서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을 수행했고, 18세에는 공군 헌병으로 입대해 휴전까지 나라를 지켰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전투 도중 모자가 빨치산의 총알에 벗겨졌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의 두 형 역시 6·25에 참전했는데, 큰형은 휴전 직전 전사했고 둘째 형은 총알이 얼굴을 관통해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삼 형제 중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씨는 6·25 참전 유공자들이 다른 보훈 대상자들보다 홀대를 받고 있다며 ‘형식적인 유공자 신세’라고 푸념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배경에는 6·25 당시 국가를 위해 총대 메고 싸운 참전 용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이군경에 대해서만 걸맞은 대우를 할 뿐, 전쟁 당시 다치지 않은 용사에겐 예우가 덜한 편입니다.”

그가 특히 서운함을 느끼는 부분은 다른 보훈 대상과 달리 유족에 대한 대우가 없다시피 한 점이다.

이씨는 “아내와 장애가 있는 60대 아들과 함께 셋이 사는데,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다 보니 어떻게 살지 걱정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2대·3대까지 각종 보상이 주어지는 이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씨는 “그 전쟁 통에서 6·25에 참전한 노병들은 학업을 중간에 하차했기 때문에 가방끈이 짧다”며 “이후 세대 유공자들처럼 어느 정도 배웠다면 처우 개선 목소리를 냈겠지만 그러지 못한 탓인지 후계 대책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내년이면 아흔인 그는 190여 명이 소속된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진주시지회에서 막내뻘이다. 생존한 노병들 상당수는 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

그는 “우리 세대는 살아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6·25에서 나라를 지킨 우리 노병들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그 처우를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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