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저 하늘에도 슬픔이
[경일춘추]저 하늘에도 슬픔이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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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진주교원단체총연합회장)
 


내가 나를 만나러 자주 가는 산에 차마 계절 따라 가지 못하고 외로이 달려 있는 밤송이가 눈길을 끈다.

마치 자식 두고 떠나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 같다.

어린 시절 겨울은 왜 그리 추웠을까? 온 몸이 어는 겨울 아침! 진주 비봉산 아래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돗가에 물동이를 가지고 줄을 서서 물을 받으면 형이 와서 물지게를 지고 가져오거나 우리를 깨우기 안쓰럽게 생각했던 어머니는 자기가 직접 가서 물을 이고 이마에 흐르는 차가운 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물독을 채우셨다.

어느 추운 겨울, 어머니는 물을 이고 오시다가 넘어졌다. 큰 병원 갈 형편이 안 되는 아버지께서는 동네에서 의학 지식이 있는 돌팔이를 불러 집에서 작은 칼로 무릎을 째고 연골을 긁어내었다.

어머니는 고통을 참으려고 입에 옷감을 ‘꽈악’ 물고 참으셨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국 서울로 가 수술을 하셨지만 평생 다리를 절고 사셨다.

아버지께서 타계하신 후 20여 년 정도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돌아보면 쓸쓸한 표정으로 나의 뒷모습을 보시던 그 눈빛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또렷해진다.

여위신 몸으로 우리 5남 3녀의 자식을 없는 살림에 어떻든 허기를 채워 주시려고 쌀독 밑바닥까지 바가지로 긁으며 애쓰시던 모습이 해마다 여름이 오면 눈에 아른거린다.

우리 어머니 18번,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요…,’고희(古稀)가 다 되어 가는 지금의 내 귀에 어머니의 오동동 타령이 살아 계신 것처럼 들려오는 것만 같다.

녹음은 날로 푸르러만 가고 만물은 힘차게 계절을 노래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다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어 애절함이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간다.

우리 형제 공동묘지를 조성하고 내가 죽으면 들어갈 1.3m 공간을 보니 제행무상의 덧없음을 새삼 느낀다. 세상 어머니 아버지의 주름은 세월 때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바로 자식의 눈물 때문인 줄 이제야 알고 보니 죄스러움이 더욱 깊어진다.

세월 앞에는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기에 드릴 수 있을 때 마음도, 사랑도 모두 진심을 다해 드려야한다. 다음을 기약하는 사랑은 하나마나 하는 사랑이며 이다음 형편이 되면 이란 핑계는 안 하니만 못하다. 부모님 살아생전 정성으로 모시지 못한 불효한 죄인은 올해도 그 날의 하늘 보며 소용없는 일이지만 용서를 빌고 또 빈다.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진주교원단체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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