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배방사 부자상봉
[경일칼럼] 배방사 부자상봉
  • 경남일보
  • 승인 2021.07.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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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물살이 세다. 정동 대산마을의 도랑은 깊고 바닥은 깎여 밋밋하다. 안전대가 설치된 좁은 마을길을 따라 올라간다. 네 번째 굽이 옆의 길고 좁다란 고추밭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고추밭을 손보고 있다. 잎과 고추를 솎아 내고 곁가지를 떼어내더니 고춧대를 살짝 뽑아준다. 실한 고추가 되기 위하여 기를 모으고 주입하는 비법으로 읽을 수 있겠다.

“할머니 배방사지가 어딘가요?”

“조금 올라가면 비석이 있다.”

인적 없는 산길 따라 올라간다. 밤나무의 노란색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곧추 자란 먼지떨이 모양이며 암수가 함께하기에 자생력이 강하겠구나!

아름드리 오동나무에 녹색 우산을 뒤집은 형상의 잎이 달려 있다. 봉황은 대나무 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오동나무에 깃을 튼다. 봉황은 용과 학이 교미하여 낳은 길조이며 길게 울면 귀인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동나무 아래 풀을 베고 빙 둘러 끈을 매단 나무말뚝을 세우고 학을 배경으로 배방사지 안내판이 있다. 메모를 하고 안내판 옆으로 올라가서 두리번거려도 비석은 보이지 않고, 안내판에 산새의 흔적이 남았다 밤나무 향기를 뒤로하고 내려왔다.

고추밭에 할머니는 기다린 듯하다. 비석이 없더라고 하자 허리를 펴며,

“매년 칠월칠석(七月七夕)이 되면 오작교에서 견우직녀 만나듯 비석 앞에서 부자상봉 행사가 있다!” 늙은이 말을 잘 들어야 비석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을 새기면서 다시 올라간다.

안내판 주변을 꼼꼼히 살폈더니 잡초 속에 비석 머리가 보인다. 새의 분비물로 하얗다. 산새도 외로워 넋을 놓고 졸았던 모양이다. 풀을 재치니 오석의 네 면에 새로로 글을 새겼다. 전면은 배방사지(排房寺址)이며, 두면에는 내력을, 한 모서리에 1988년 5월 30일 사천문화원 립(立)이다.

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저미는 만남이 있었다.

고려 현종의 아버지는 왕건 8번 째 아들 욱(郁)이고 어머니는 헌정왕후였다. 경종이 26세의 젊은 나이에 죽자 과부가 된 헌정왕후는 시숙부 욱의 집을 왕래하다가 사랑에 빠져 아들 순(詢)을 낳자마자 죽고, 성종은 욱을 사수현 사남 땅에 귀양 보낸다.

겨우 말을 배운 순은 성종에게 안기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자 불쌍히 여겨 사수현으로 보냈다. 부자상봉의 길은 열렸지만 함께 살 수 없었다. 순을 배방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욱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배방사를 찾았다. 돌아오다 고개에 올라 배방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곤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 고개에 아들을 되돌아본다는 고자정(顧子亭)을 세웠다. 순이 지었다는 사아시가 전해져 온다.

작디작은 꽃뱀 새끼가 난간에 올랐고/나온 몸은 비단 같고 반점은 아름답네/이 작은 꽃뱀도 숲에만 살 것이라 말하지 말라/때가 오면 하루에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것을,

순이 다섯 살 되던 해(996)에 욱은 순에게 금 한 주머니를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이 고을 성황당 남녘 귀룡동(사남면 능화마을 뒷산)에 매장하되 반드시 엎어서 묻게 하라!”

시체를 엎어서 묻으면 더 빨리 임금이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배방사에서 시오리 떨어진 안종능지(安宗陵址)에 묻혔었다.

이듬해 순은 개경으로 올라가게 되고 이듬해 성종마저 죽는다. 순은 승려로서 숭교사에 머물렀다. 목종은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니 고려 8대 현종이다. 욱이 죽은 지 13년 만에 순은 왕이 되었다.

순은 왕으로 즉위한 후, 은혜를 베푼 땅이라 진주목에 속했던 사수현(泗水縣)을 사주(泗州)로 승격시켰다. 당시 전국에는 12개주만 있었으니 가히 파격적이라 할 것이다.

고려사절요에서는 현종 6년(1015년)이라 기록하고 있다. 사주를 왕의 고향이란 풍패지향이라 했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불리는 곳은 고려시대 사주와 조선시대 전주 밖에 없다. 이후 사천으로 된다. 지명은 두 글자로 구성되는데 泗는 그대로이며 뒷 자는 水에서 州로 川으로 변하였다.

고려 현종은 사천의 귀인이다. 배방사지에 오동나무를 심고 정자를 세워 산새와 길손에게 쉼터가 되게 하자.

정자 이름은 七월七석부자상봉亭을 줄여 ‘七七亭’이 좋겠지!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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