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다행이다
[경일춘추]다행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7.0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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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근래에 ‘다행이다’라는 말을 참 많이도 하고 듣기도 했다, 문득 드는 ‘다행’이라는 말이 행복과 불행 속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극과 극 사이에서 지그시 눌리는 버거움과 위로의 힘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말 속에 좋지 않은 일은 이미 일어났지만 더 악화되는 상황은 맞이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으니 그나마 위로의 단어 중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이란 말은 어느 해부터 내 몸이 나빠진 것 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처방전 같은 말이었는데 요즘 가까이에 있는 분들에게 자주 쓰는 단어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늘 건강했던 분들이 병원신세를 지니 한동안 소식이 뜸하면 또 병원에 간 것 아닌가 지레짐작하고 놀라서 전화하게 된다. 몸의 나이는 속일 수 없고 몸을 쓴 만큼 약해져 잔병들이 여기저기 찾아올 나이가 된 것 같다. 이상이 없는 거 같아도 어느 날 훅 찾아오는 몸의 이상 변화에 병원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워낙 운동도 좋아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다 보니 병원 한 번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 늘 행복바이러스 같은 존재로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난치병명으로 병원신세를 지닌 나도 남편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건강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인데 남편의 건강을 너무 많이 믿은 게 잘못이라면 내 잘못(?)이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큰 이상은 없었고 건강상태를 한 번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으니 마음고생만 한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아직 고생한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큰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이 보다 더 다행한 일이 있을까! 마을 어귀에 묵묵히 서서 우리 마을 액운을 다 막아 줄 것 같은 포구나무도, 논밭에 빼곡히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캄캄한 밤에 마당에 나가 거닐다 보면 옆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만 봐도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위로와 든든함으로 다가온다. 다행이다. 7월로 들어선 요즘 우리 마을 산에는 나리꽃이 피고지고 진분홍 자귀나무 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다.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숲은 고요한데 우리네 삶은 바쁜 일상에 하루 상관으로 좋은 일과 힘든 일들이 겹쳐 찾아오기도 한다. 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는 것도 다행이다. 나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일하고 같이 밥 먹고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평범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소중한 지 급격하고 커다란 변화 없이 오늘 하루 살았음을 주문처럼 ‘다행이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말하면 좀 견딜만해진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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