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되다
[경일시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되다
  • 한중기
  • 승인 2021.07.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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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내년 3월9일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나설 예비후보자 등록이 그제부터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했다. 앞으로 8개월 동안 국민들은 좋든 싫든 출사표를 낸 후보자들의 면면을 잘 살펴서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우리는 매 5년 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있다. 장기집권과 독재정권의 심각한 부작용과 폐해를 겪었던 우리로서는 그 어떤 것보다 대통령의 단임제가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지방의원들의 임기가 4년인데 반해 대통령만 임기 5년의 단임제를 취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대통령 임기를 둘러싼 논란이 선거 때마다 불거지고 있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절대적 권위 같은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났지만 정권을 잡게 되면 개헌논의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권력의 달콤함에 취한 나머지 민주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오만과 독선이 집권세력 내에 만연해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말았다. ‘민주적 가치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던 ‘촛불정권’마저 민주주의의 발전은 커녕 전체주의를 조장하고 불공정의 대명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민들은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힐난 한다. 잘 못 뽑은 탓을 애먼 ‘손가락’에 돌리는 자기합리화로 다음을 겨냥하지만, 역시 현란한 말잔치와 편 가르기에 속아 넘어 가기 일쑤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반증하듯이.

내년 5월 10일 취임하는 제20대 대통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재 거론되는 후보자 중 한 명이 주인공이다. 지난 주말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6명은 오는 9월 5일까지 50여 일간의 본 경선을 거쳐 1명이 최종 후보자로 선출된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국민의힘 후보자 등 대략 15명 중에서 1명이 최종 후보자로 선출된다. 이 밖에 군소 정당의 후보가 난립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여야 유력 후보자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적어도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그렇다. 최선 아니면 차선이라도 골라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골라내느냐다. 수많은 후보자 중에서 과연 어떤 인물이 국민을 위한 충견인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은 이른바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어둠과 빛이 뒤섞여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경계의 시간, 어둠 속 실루엣이 충직한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시간대를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천문박명 항해박명 시민박명 등 매직아워로 표현되는 이 시간대에 사진작가들은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개인지 늑대인지 사물을 쉽게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걸작을 창조하는 최적의 타이밍을 포착하듯 우리는 예리한 눈과 판단으로 올바른 후보자를 골라내야 한다. 충견이 되리라 약속해놓고 권력을 쥐자마자 민의를 저버린 채 음흉한 늑대로 변신한 숱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델타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공포를 몰고 온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개와 늑대의 시간’ 앞에 섰다. 전대미문의 팬데믹 이후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어떤 미래가 열리게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스름 어둠 속에서 개와 늑대들이 다가오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충견을 찾아야 한다. 늑대가 주인 행세하는 세상을 끝장내야 한다. 더 이상 그런 꼴을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낱낱이 살펴서 따져 묻고 캐물어서 걸러내고 국민이 고삐를 쥘 수 있는 충견이 될 인물을 뽑아야 한다. 슬기로운 ‘개와 늑대의 시간’을 가져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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