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연꽃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경일춘추]연꽃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경남일보
  • 승인 2021.07.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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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이 맘 때 쯤 시골의 산뜻한 바람 한 줄기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산들바람이고 알 바람이다. 바람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온도나 기압 등의 차이 때문에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또 하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몰래 다른 이성과 만나고 관계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기도 하지만 바람은 대체로 살아있는 모든 것의 성장을 돕는다. 아파트에서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경우는 아마도 바람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름으로 접어든 요즘은 연꽃 보러 가기 좋은 날이다.

나는 유명해서 사람을 끄는 곳이 아니라 인적이 드물고 호젓한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아담한 산을 배경으로 한 이 생태공원에서 조용하게 핀 연꽃을 오롯이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연꽃바라기는 햇살이 따끈해도 좋고 비가 내리는 날도 좋다. 한 번에 화르르 다 피고 지는 야단스런 꽃이 아니기에 한 곳에서 한 번에 오랜 시간 연꽃 봉오리에서 씨앗 영그는 모습까지 그들의 일생을 다 볼 수 있어서 좋다. 바람에 일렁이는 넓은 연잎을 볼 때마다 마음자락 깊은 곳까지 선선하게 부채질 해주는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일상의 긴장감을 스르르 풀어 놓게 된다. 짙푸른 연잎과 분홍빛 꽃잎이 따로 또 함께 어우러져 묘하게 아름답다. 그렇게 가만히 꽃대를 곧게 세우고 피워 올린 연꽃을 보고 있노라면 은은한 향기가 그윽하게 다가온다. 그 향기와 맑게 피워 올린 그 꽃잎 속에 품고 있는 암술과 수술을 보며 꽃 속에 꽃을 본다. 씨앗이 영글어가는 모습도 특이하다, 방방이 한 알씩 결실을 쟁여두는 것이 이채롭다. 그 결실이 생명을 품고 천년을 기다렸다가 좋은 세상이 왔을 때 존재를 드러내며 꽃을 피운다고 하니 작은 씨앗이라고 우리가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생명을 품고 시간을 보내는 그 인내력은 사람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여름 강한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 조금씩 씨앗은 커지고 단단해지는 사이 연꽃 대는 낡고 퇴색되어 변해간다. 연 밭에서 시간을 본다. 비 오는 날 연잎은 빗줄기를 잡지 않는다. 잎 위에 빗방울 한 두 방울 공 굴려보다가 그것마저 바람에 맡기고 머금어 잠시 영롱했던 그 빛도 잠시 빌릴 뿐 소유하지 않는다. 빗물이 고여 버거울라치면 주저 없이 연대를 구부려 물을 쏟아 내린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 삼독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 일이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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