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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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7.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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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언어미학의 대표시인 고영조(2)
 


고영조의 시집 ‘길 모퉁이 카페’의 저자 산문 ‘시의 변명’에는 2008년도 발표작 ‘지붕’을 소개하고 있다. 시인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14층을 두고 ‘지붕’이라는 제목으로 옥상까지를 스케치하고 있다. 재미 있다. 찬찬히 읽기로 하자.

나는 11층에 살고 있다. 나는 10층 길수네 지붕에 살고 있다. 길수네 지붕에서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우리집 지붕에는 점택씨가 살고 있다 점택씨는 엘리베이터로 흙을 퍼올려 야생화를 기르고 있다 점택씨의 야생화는 허공을 건너가려고 발코니 추녀에서 고개를 길게 내밀고 피어 있다. 준이네는 점택씨의 지붕에서 귀가 축 쳐진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개들은 12층 지붕에서 양은 밥그릇을 뒤엎으며 싸우고 있다. 14층 중년부부는 어제 이사가고 13층 지붕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그집 지붕에는 안동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안동 할머니는 병산서원의 참새처럼 아침이면 지상의 노인정에 내려왔다가 해가 지면 14층 지붕으로 올라 가신다. 그리고 아파트가 끝나는 할머니의 지붕 위에는 하늘이 있다. 아파트가 하늘 한 귀퉁이에 꽉 박혀 있다. 안동 할머니의 지붕에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커다란 하늘 티브이가 있다. 하늘 티브이에는 밤이면 안동 할머니의 소금배를 싣고 하회를 굽어도는 푸른 은하수가 있다. 나는 길수네 지붕에서 신문을 보다 문득 흰구름 떠가는 안동 할머니의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 티브이를 함께 보고 있다. -‘지붕’(2008)

시인의 아파트는 총 15층으로 읽힌다. 10층에는 길수네가 살고 스스로의 집을 ‘10층의 지붕’이라 하고 ‘11층 지붕’ 12층에는 야생화를 기르는 점택씨가 살고 ‘12층의 지붕’ 13층에는 개 두 마리를 키우는 준이네가 살고 ‘13층의 지붕’ 14층에는 중년부부가 어제 이사갔고 ‘13층의 지붕’에는 안동 할머니가 혼자 사신다. 아침이면 지상의 노인정에 왔다가 저녁에는 엘리베이터로 그 층으로 올라가신다. 14층 지붕은 하늘이고 하늘 티브이가 있다.

이 시는 서른 개의 공간을 층층이 쌓아올린 아파트를 주제로 한 시다. 609동이라는 단일 공간을 가구별로 분해해서 개별화한 표현이다. 양쪽으로 30세대가 살고 있는데도 그렇게 보고 있다. 시 속의 나는 그 속에 파묻혀진 나와 이웃을 시를 통해 만나고 있다. 복합 세대의 복합 주거지임을 잊어버리고 사는데 이 시는 그런 공간이 낯설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풍경이자 공간임을 확인시켜 준다.

필자는 거기에 비해 모두 20층 아파트에 17층 높은 쪽에 산다. 처음 단독주택을 팔고 공중에다 평수를 매달아 놓은 이슬아슬한 아파트를 사서 들어와서 도대체 잠들 수가 없었다. 지상에 닿는 공간에 나의 집터는 없다. 있다 하더라도 50평 집으로 치면 2평 남짓이니 가장으로서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러고도 20년을 살았다. 지금은 아들도 다 나가 살고 손녀도 유학가 살지만 같은 라인의 어린이들이 무럭 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외경을 느끼며 산다. 그 중에는 아이돌 수준의 미남도 있고 탈렌트 수준의 여자아이들도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감을 신비로 바라본다.

고영조 시인은 아파트에 살면서 위층(지붕)에 신경을 쓰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위층이 문제일 때는 어린이들이 있을 때이고 아래층이 신경이 쓰일 때는 물이 아래로 새는 경우이다. 집을 두드려 부수는 지경까지 가는 수가 있으니 위층 사람이 고스란히 신경이 쓰일 밖에 없다. 시인 유희선은 수필 ‘소리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아파트의 아래위층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천장과 바닥을 경계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다가 문이 활짝 열린 앞집의 내부를 힐끔 훔쳐보는 것과는 다르다. 보다 지속적이고 은밀한 관계임이 분명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드는 소리와 함께 사는 것이다.” 아래 위층을 층을 이루며 산다는 것은 일정한 부분의 소리를 공유하며 짐작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족이 떨어져 살고 다시 합가하고 눈물소리를 내고 웃음을 맞이하기까지 수년을 기다리기도 하는 이웃간이라는 것이다.

고 시인은 짧은 시에서 사람들의 잠자고 있는 의식을 일깨워주는 경우가 많다. 공간을 보면 아파트, 카페, 흑백다방 등이 그렇고 음악의 경우 기타 콘서트, 첼로, 피아노 등이 그렇다. 삶이 독특하거나 재미를 두드려 음질로 바꾸는 재주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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