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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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7.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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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언어미학의 대표시인 고영조(3)
 
고영조 시인은 카페를 좋아하고 다방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런 것들을 뜻으로 담는 시를 쓰지 않는다. 그냥 밥 딜런의 포크음악 흥얼거리듯 실로 가벼운 심상으로 접근한다.

“길 모퉁이 카페 앞에/ 앉아 있다/ 다리가 부러진 간이 의자에/ 기우뚱/ 앉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앞이 보이지 않은 듯/ 왼쪽? 오른쪽?/ 어느쪽으로 가려는지/ 기웃거린다/ 이곳 저곳 /냉이꽃 하얗게 피어 있다/가던 길 멈추고/ 한 사람/ 벚꽃잎 흘러가는 / 시냇물 굽어보고 있다”(<길 모퉁이 카페>에서)

별 생각 없이 길 모퉁이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그 기웃거림 보고 앉아 있다. 하염없이 바라본다고나 할까? 시인은 무슨 지향애 골똘해 있는 것이 싫은 것일까. 시냇물을 굽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서정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짤즈부르크 광장에 있는 모차르트 단골카페 ‘토마셀리’에서 멜랑쥬우를 마시며, 오슬로 그랜드카페 그 자리에서 오후 2시 죽은 입센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카페광인 셈이다.

고영조 시인은 진해에 있는 ‘흑백다방’을 시로 썼는데 그 다방 주인은 60·70년대 액션 페인팅의 개척자 유택렬 화백이었다. 물론 시는 고요하다. “낡은 시간을 만지며 / 봄날 저녁 /내 몸속에서 울리는 / 바스락거리는 소리/ 고요히 듣는다” 필자는 경남도문화상 심사 책임시절 그 유택렬 화백이 수상하게 되어 인상 깊게 와닿는 액션 페인팅이다.

필자도 카페 이전에는 진주 장대동의 새벽다방을 선호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다방에는 잠이 없는 장생도라지 회장님, 진주의 전설 1970년대 진주KBS 강아나, 정원 전문가 여러분 등이 교양을 나누는 일금 일천원짜리 모닝커피가 서민적이었다. (진주의 청동다방도 70년 개천예술제 산실이었다.)

고영조 시인은 드물게도 블루스 하모니카의 연주가이다. 양재성 시인이 키보드 연주가인데 이들 두 사람은 뜻을 모아 해변 공연을 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는 ‘기타 콘서트’ 라는 시를 썼다. “준이가 기타를 끌고 다닌다. 이 방 저 방 뒤뚱 뒤뚱 뛰고 굴린다. 기타가 문지방에 부딪칠 때마다 드롱 드롱 울린다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다. 1975년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끌고 가던 퍼포먼스 세 살 준이는 오늘 기타를 난생 처음 본다. 기타를 자동차처럼 배처럼 타고 논다….”이 시는 백남준의 예술이 극실험적인 아방가르드로서의 면모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기타에서 꼭 정통한 현이 퉁기는 소리를 내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는 퍼포먼스이다. 굴리고 부딪치고 끌리고 하는 소리들!

예술은 그 정해져 온 리듬이나 소리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부대적인 부딪침으로도 또 다른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실험! 그러니까 고 시인은 인접 예술로서 자신의 예술을 더 진전시키고자 하는 그런 욕구를 지닌 시인인 것이다.

다음 시는 누구나 한 번쯤 쓰고 싶거나 이미 썼을 시다. ‘침묵- 코로나19’이다.

“마스크 쓰고/ 입 닫으니/ 아무도 뭐랄 사람 없다/ 왜냐 하면 / 그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 입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몽둥이를 치켜 든/ 한 시대의/ 이 거대한 굴종/ 보이지 않는 손으로/ 누군가/ 침묵의 재갈을 물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실 인류 문제이고 종교까지 간다면 상당히 깊은 데까지 손이 닿아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마스크를 쓰고 불편하고 접종하고 최소대면하고 노력하고 공동체가 가는 삶의 의무를 찾아나아가는 선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늘 대비 부족이고 의외 돌발 단계로 발전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길의 한계선상에서 생존의 안전대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마지막 발언선에 임박해 있다.

그런 가운데 시인은 비유를 다해 쓰거나 언어의 존재성 너머에 있는 형이상에 의지해 쓰는, 최대한의 진지성이 담보되어서 써야 할 것이다. 의무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할 시, 그 시는 어떠해야 할까? 어쩌면 포기, 어쩌면 절망일지 모른다. 모든 시인은 그 한계를 알고 그 근처에까지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서정주의 시 어느 구절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이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 앞에 기대 섰을 뿐이다” 그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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