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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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8.0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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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김유철의 시와 시대 속의 사람들(2)
 


필자는 김유철 시인의 그 어떤 시편보다도 일제 위안부 시편에서 눈이 머물고 있다. 그것은 영화 ‘귀향’를 본 이래 그 서러움과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귀향’의 본래 제목은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서 그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조정래 감독의 영화는 주인공이 14세 나이의 여자아이 정민이었는데 경남 거창의 한 마을에서 왜놈 순사에게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죽고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나약한 여자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총칼이요 육신이요 폭압적 운신이어서 영화가 내내 지옥으로 연출되는 시간이 흘렀다. 병이 나기라도 하면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넣고 학살했고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면 은폐하기 위해 집단으로 소녀들을 학살했다. 잔인하고 무도했다. 전쟁에서 일군이 패색이 짙어지자 정민이가 속해 있는 소녀들이 집단 죽임을 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독립군이 닿았지만 한 발 늦었고 정민이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영화를 일본에서 비공식 공연을 했을 때 한 일본 관객은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었다”고 했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역사라서 모르는 부분을 알았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어떤가. 그 일본인들의 반응과는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할까, 무엇이 우리를 우리이게 할까? 깊은 사색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았으면 시를 읽자.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자. 예술적 충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이게 하고 민족이 겪은 역사의 실체에 닿게 한다.

김유철은 이때 우리 독자에게 다가온다.

“같은 날 피워올린 꽃들도/ 떨어지는 날은 달랐다/ 같은 날 품어올린 연두빛 잎새들도/ 낙엽되어 떨어지는 색깔은 달랐다

서러운 일이다/ 서럽고 서러운 일이다/ 같은 날 핀 꽃들이/ 같은 날 흔들린 잎들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어머니 손을 놓고 이역만리길 폭탄소리 들리는 곳으로 가던 날/ 꽃들은 귀가 멀었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이 하던 말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이 하던 말

폭탄보다 더 무섭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꽃들은 귀가 멀었다

고향산천을 뒤로 하고 물빛도 하늘빛도 처음 보는 무서운 땅으로 가던 날

꽃들은 눈이 멀었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의 검은 눈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의 붉은 눈

폭탄보다 더 무섭던 사람들의 눈동자 번득거림에/ 꽃들은 눈이 멀었다

어디로 가는가/ 꽃들은 떨어져 어다로 가는 것이며/ 잎들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 시대는 어찌하여 꽃들이 가는 길은 길마다 슬프고 잎들이 가는 길도 길마다 슬픈 것인가. 역사는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며 피해자는 고스란히 당하며 죽음을 죽음 이상의 고통으로 맞이해야 하는가. 시 작품은 그 통절함을 손에 잡히는 비극의 실체로 민족 앞에 내놓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시인을 들라 하면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쓰며 민족의 정서로 목숨을 걸었던 시인들이 이들이었다. 특이한 현상으로는 일제가 그들 치안유지법으로 유약한 윤동주를 죽였는데 오늘 일본에서는 그 유약한 우리의 시인을 기억하고 기리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민족시인은 지금에도 김유철 같은 시인이 민족의 시인이다. 가슴에 있는 눈물을 짜서 잊혀져 가는 역사의 실체를 만나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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