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지난 주말 아내랑 영화 모가디슈를 관람했다.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 최초의 200만 돌파를 앞둔 영화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엔딩이 올라 간 뒤 한참 동안 자리를 떠지 못하게 했다. 신파나 진부한 클리셰 없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서사구조는 관객의 주목을 끌기에 부족함 없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북한 대사관 직원·가족들의 목숨 건 탈출의 감동과 소말리아 내전의 참상을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게 한 영화다. 서로 관계개선을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 서로 손잡고 상대방을 신뢰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는 감동적인 장면 못지않게 광기어린 살상과 야만적인 폭력이 안겨주는 내전의 참혹성은 뜻하는바 크다.
7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남북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극렬 선동꾼들이 벌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은 총칼만 안 들었지 마치 아프리카 내전을 방불케 한다. 내 편 아닌 네 편에게 저질러지는 무자비한 인격살인은 내전국의 살상행위와 하나 다를 바 없다. 사생결단을 보겠다는 듯 모든 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대립한다. 정치적 내전이다. 같은 편 중 누군가 어쩌다 입바른 소리라도 한 번 낼라치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좀비 같은 무리들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반면 아무리 천벌 받을 짓을 했어도 내편이 했다면 세상없어도 괜찮다. 법이 잘못됐고, 사회가 틀렸으며, 판사가, 나라가 문제여서 그렇다는 프로파간다의 궤변을 철썩 같이 믿고 막무가내로 따른다.
상대 후보의 검증을 빙자한 네거티브 수법도 가관이다. ‘내검남네’(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네거티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내로남불’의 대선용 버전격이다. 천박함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당내 경선이 한창인 여권은 물론이고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있는 야권에서도 유행하는 버전이다. 아무리 정당 간 치러지는 선거가 내전의 순화된 형태라지만 정도가 심각하다.
축제여야 할 선거가 이권다툼을 벌이는 내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 보다 철저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한이 부여되는 현행 대통령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전쟁 같은 선거는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 싸움의 관람자인 동시에 선수로 참전하면서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앞으로 7개월 동안 이어질 대선정국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다. 내전 같이 치러지는 선거전을 정치적 경쟁으로 순화시키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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