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니가 왜 거절 안 했어?
[여성칼럼]니가 왜 거절 안 했어?
  • 경남일보
  • 승인 2021.08.11 2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성인지 관점이 뭐길래 요즘은 성 사안을 두고 ‘성인지 관점이 빠진 수사’, ‘성인지 관점이 빠진 재판’, ‘성인지 관점이 빠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질까?

‘성인지 관점이 빠진’ 이라는 말은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판결문으로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도지사의 성 비위를 비서가 미투로 고발한 사건이다. 도지사의 비리나 청탁이 아닌 성 사안을 다룬 판결문에 ‘성인지 관점’이 빠져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성인지 관점이란 어떠한 성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 위치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교수는 학생의 학점 또는 취업에 필요한 추천서 등으로 학생들에게 이익과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을 위력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교수의 성 요구에 응하면 이익을 줄 수도 있고,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라고 한다. 이런 관계에서 위력을 가진 사람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교수와 학생 간에 성 사안이 발생했을 때 피·가해자가 어떤 위치인지, 어떤 상황인지 고려하는 것을 ‘성인지 관점’이라고 한다.

만약 해당 조직이 성인지 관점이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성 사안을 처리하면서 피·가해자의 위치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항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조사 또는 수사하거나, 징계 또는 재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나의 성 사안을 두고 피해자를 탓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니가 왜 거절안했어?”, “니가 처음부터 거절했어야지.” 이것은 질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자 공격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이 조직에서 가해자의 행위는 용이하고, 지속될 것이다. 피해자는 신고 후 예상되는 2차 피해로 인해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혼자 조용히 울분을 삼키며 살아야 한다. 위력을 가진 사람의 성 요구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그 상황을 모면하기 급급할 뿐이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재판이 문제가 된 것은 성 비위를 다루는 재판과정에서 성인지 관점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도지사는 비서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서는 도지사의 성적요구에 저항이나 거부가 힘든 위치이다. 그런데 1심 재판에서 비서에게 ‘당신이 어떻게 거절했는지’, ‘당신이 어떻게 거부했는지’ 묻는 질문이 300여 개 쏟아졌다. 그리고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자, 그렇다면 거꾸로 질문 해보자. 성적 언행을 한 사람, 성 요구를 한 사람,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사람, 상대방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본인의 선택이 자유로운 사람에게 질문해 보자. “당신은 왜 비서에게 성적 언행을 했습니까?”, “당신은 합의된 관계였다고 하는데 상대방과 어떻게 합의했습니까?”, “당신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동의를 받았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근거를 내놓으면 1심의 무죄 판결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다. ‘성인지 관점’으로 유·무죄가 달라진 대표적 사건이다.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이렇듯 성 비위에 있어 ‘성인지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피해자가 사회를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신고하면 피해자는 보호받고 가해자가 처벌받는다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다. 성인지 관점은 한 사람의 문제, 이 업무를 담당하는 한 부서의 문제, 잘하고 있는 어느 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성인지 관점을 가질 때 피해자를 보호할 수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재발 방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