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60] 산수국 통신 (강영은)
[강재남의 포엠산책 60] 산수국 통신 (강영은)
  • 경남일보
  • 승인 2021.08.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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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좁다란 땅을 가진 옆집에서 길고 좁다란 닭 울음소리가 건너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이 젖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을 꽃피우고 싶어졌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 속에서 길고 좁다란 뱀을 꺼냈습니다. 길고 좁다란 목에게 길고 좁다란 뱀을 먹였습니다. 길고 좁다란 목을 가진 닭울음소리가 그쳤습니다. 비 오는 북쪽이 닭울음소리를 훔쳤겠지요. 길고 좁다란 형용사만 그대 곁에 남았겠지요.

비 개어 청보라 빛 산수국 한 그루 피었습니다. 그대에게 나는 산수국 피는 남쪽이고 싶었습니다.

 


길고 좁다란 형용사가 똬리를 틀고 있네요. 지금은 비가 오고요. 태풍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는 길고 좁다란 바람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길고 좁다란 골목을 통과하는 중이고요. 늦된 바람이 길고 좁다란 돌담에 자리를 잡겠지요. 어디선가 닭 울음이 건너올 것 같아 귀를 기울입니다. 길고 좁다란 목을 가진 닭은 돌담 틈에 촘촘히 울음꽃을 새기겠어요. 비 오는 북쪽이 훔쳐갔을 울음은 그 나머지겠군요. 어쩌면 길고 좁다란 뱀이 먼저 훔쳐갔을지 모를 일이겠고요. 비 오는 북쪽은 태풍이 끝나자마자 후기 장마가 시작된답니다. 비는 한동안 길고 좁다랗게 올 거예요. 습한 공기를 쏟아내는 지금은 막바지 8월이에요. 두 계절이 공존하는 이즈음 들판엔 산수국이 한창이겠죠. 비에 젖은 산수국 헛꽃이 나비 날개를 연상케 한다는 걸, 꽃 앞에서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게 새삼스럽네요. 참꽃을 감싼 헛꽃을 긍휼이라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길고 좁다란 땅을 가진 옆집에서 젖고 있을 오래된 기억을 떠올립니다. 청보라 빛 산수국으로 피어 영원한 남쪽이었으면 하는 화자의 그대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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